엉망이 된 한국 사회는 이제 어떻게 될까?
사회 발전의 방향이 잘못되면 변화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그 사회는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할 수 없다. 생활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의 대외적인 경쟁력은 올라갈 수 있지만 성장의 근본적인 동력인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잘못 틀어진 방향을 바로 잡지 않고 달려온 대한민국은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는 동안 지켜져야 할 정신적인 가치들이 사라졌기에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수습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과연 대만한국은 사회 곳곳에 스며든 구조적인 병폐와 비민주적인 부패를 해결할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제대로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한국 사회는 무한경쟁을 통한 성과주의 그리고 과정에서의 윤리성을 배제한 결과주의를 사회발전의 모토로 내걸고 달려왔다.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편법과 불법이 동원되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위해서 원칙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물질적인 이익으로 대변되는 효용성과 효과성은 좋은 것이었고 정당성을 검증하고자하는 사회적인 담론은 이념 프레임에 짓밟혔다. 방향성을 상실한 사회는 당장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구성원간의 아귀다툼으로 엉망이 되었다.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용기 있는 사람의 고발과 외침은 배신으로 취급받아 매장 당했다. 결과만을 중시했던 사회발전 방식은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회를 올바로 인도할 정신적인 가치들은 잘려나갔다.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발전을 이룩한 나라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장은 경제와 생활수준이라는 양적인 측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성공인 발전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나 사회발전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었던 탓에 문제들은 손대기 어려운 고질병으로 변했다. 학자와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는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에 불과했고 문제 개선에 집중될 수 있었던 국가적인 역량은 정치적인 다툼에 의해 자주 분산되었다. 그마저도 결정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중심인 국민들의 여론은 언제나 배제 당했다.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문제해결과정에 있어서도 국민은 주체가 아닌 객체였다. 권리를 빼앗긴 국민 아닌 국민으로 취급받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속는 셈 치며 지도자들에게 때가 되면 권력을 자진해서 넘겨주었다. 국가의 내일을 제시해야할 이들은 방향성을 잃어버렸고 이들을 비판적으로 감시해야할 국민은 권리를 모두 빼앗긴 상황.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한국 사회는 비대하게 몸집만을 부풀렸을 뿐 깊이 있는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 비리와 부패는 차고 넘쳤고 법과 원칙을 위반한 이들의 성공신화를 보면서 사회구성원들은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된다.’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사라진 시점에서 그나마 유효했던 대한민국의 반쪽짜리 발전은 빛이 바래버렸다. 사람들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문제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성과주의의 폐해나 고착화된 사회구조적 문제, 인문학의 위기에서 비롯된 의식수준의 하락 등을 원인으로 꼽을 필요도 없다. 윗물은 썩었고 아랫물은 혼탁했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우리 사회가 뒤늦게라도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올바르게 설정한다고 해서 제대로 변화할 수 있을까 싶다.
‘진짜 위기는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이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가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해준다. 한국 사회는 이미 21세기로 넘어오기 전부터 시한폭탄을 안고 있었다.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 그리고 문화생활수준의 향상의 이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의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는 공정성과 윤리성을 잃어버린다. 무한경쟁을 통한 선별은 서로가 적이 되어 통합을 저해한다. 연고주의는 정당한 경쟁과 노력의 가치를 부인하며 엘리트 중심의 서열문화는 다수의 패자를 양산하여 갈등과 불만을 야기한다. 어떤 문제가 원인이고 어떤 문제가 결과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마치 합병증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결책을 꼽는다면 계산적인 시각과 해묵은 감정은 내려놓고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이 ‘공동체적인 승리’를 위해서 협력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계층은 비리를 근절하고 본인들에게 위임된 권력이 국민들로부터 빌려온 것임을 되새겨야한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야기하는 이념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는 지양되어야 하며 정치색이 아닌 정당성을 가지고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시민들은 의무감을 발휘하여 정부와 정치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지속해야 한다. 어느 한 계층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이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해야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연대가 비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치부된다면 이미 우리 사회의 발전 가능성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옳은 것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쓰는 말세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 의식수준이 높은 사회라고 불리는 선진국들 역시 저마다 내부적인 문제들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몇몇 선진국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려는 시도를 피하지는 않았다. 의혹은 부인하고 구체적인 처벌은 유예되고 근본적인 원인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우리 사회와는 다르게 말이다. 칼자루를 잡고 있는 책임자들을 국민이 신뢰할 수 없는 사회. 오점으로 남은 잘못된 역사가 버젓이 반복되는 사회. 정치적인 위기와 사회적인 혼란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집단이 득세하는 사회. 앞길이 어두운 지금의 대한민국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사회적연대와 협력이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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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별은 빛나고 있다, 17 x 25cm, 카드보드에 오일파스텔,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