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숨어있는 동네
일요일 서울의 오후는 유난히 포근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노란 은행잎들을 거리 곳곳으로 날려 보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따뜻한 날씨 탓인지 모두 겉옷을 벗어 들고 있었다. 며칠 후면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뉴스의 일기예보는 꼭 거짓말처럼 들렸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환한 햇살이 눈부신 일요일 오후. 누구를 만나도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은 좋은 날 나는 아끼는 동생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고군분투 하는 동생을 격려했고 이에 화답하듯 내가 쓴 글을 잘 읽고 있다는 고마운 응원이 돌아와 기분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문래동을 향해 걸었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철공소들이 사이좋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문래동. 예술인의 거리에서 관광객의 거리로 변모한 홍대나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 못하게 된 이태원과는 달리 문래동은 변한 것이 없어 아름다운 동네다. 작업실을 구하려고 처음 발을 들였던 그 때나 지금이나 문래동은 골목 사이사이 숨겨진 보물 같은 공간을 품고 있는 매력이 퇴색되지 않았다. 문래동에 처음 와본 동생은 불 꺼진 철공소 골목길 사이 환하게 불을 밝힌 공방과 플라워샵을 보면서 작은 탄성을 질렀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 예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자리 잡은 공간. 자신 만의 비밀스런 아지트를 발견하고 지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매력을 가진 문래동은 늘 아름답다.
주말이면 어디든 사람으로 붐비는 인구과밀의 도시 서울에서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문래동 같은 동네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판촉행사로 시끄러운 홍대거리와 SNS에 올릴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한 경리단길에서 나는 즐거움대신 피곤함을 훨씬 더 많이 느꼈다. 거리를 가득채운 인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피하듯 식당과 카페 문을 열 때면 돈을 지불하고 여유를 구매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나는 문래동이 그리웠다. 단층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문래동은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난 예술가들의 피난처임과 동시에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이들의 아지트다. SNS에 해쉬태그만 몇 개 입력한다고 보물 같이 숨어 있는 문래동의 공간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문을 두드려야만 발견할 수 있는 카페와 BAR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인 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의 온기를 닮은 문래동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쉽고 편한 것이 좋은 것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남들처럼 그리고 남들만큼 사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좋아요’가 많이 붙은 음식점은 주말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 먹고 가야만하는 관문이 되었고 동네 단골들이 주로 찾던 작은 카페와 술집은 인증샷을 찍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가 되어버렸다. 우연찮게 들른 낯선 동네의 매력적인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보다는 추천코스와 방문후기를 읽는 것이 더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있어 애정과 시간을 쏟아야하는 불편함은 곧 불필요함이었다. 그러나 관계를 형성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매력적인 공간은 간편함과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감수하는 애정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은 편리할지는 몰라도 결코 특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좁은 골목을 벗어나면 하나 둘 보이는 작고 예쁜 간판들. 화려한 네온사인과 브랜드네임을 큼지막하게 달고 있지 않아도 사람들은 문래동의 소박한 공간들을 찾아온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볼수록 매력적인 문래동은 이 곳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풀꽃처럼 고운 문래동. 시간이 흐를수록 제 모습을 잃어가는 서울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가는 문래동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