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은 투기가 설치고 불황은 사기가 판치는 대한민국
욕망이 가득한 호황기는 투기가 극성을 부린다.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별 볼일 없는 회사도 상장만 하면 큰 수익을 낸다. 돈 번 사람들을 보고 너도 나도 투기판으로 뛰어든다. 직장인들은 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사고 노인들과 학생들 마저 투자에 손을 댄다. 미디어를 통해 벼락부자가 된 이들의 인증이 줄을 잇다 보면 열등감과 불안감이 조바심을 불러일으킨다. 막차를 탑승하려는 사람들은 한적한 지방 벽촌까지 임장을 다니거나 투자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부풀어 오른 크기가 클수록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호황이 되면 돈이 넘친다. 사기꾼들은 더 큰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터무니없는 사업모델이라도 돈이 들어온다. 인간은 욕망에 눈이 멀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드는 존재다. 고점으로 보일만한 지표가 드러나도 개의치 않는다. 붕괴가 시작되기 전까지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한다. 빚내는 것은 능력이고 부채로 더 큰 부채를 만드는 법이 지혜로 평가받는다. 투자가 사라지고 투기가 일상화된다. 시장은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비대하게 덩치가 늘다 보면 관절이 망가진다. 불협화음이 나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따서 갚으면 그만이라는 상식을 벗어난 방식이 정답으로 통하는 시기다.
코로나시즌이 만든 비정상적인 호황이 불러온 버블은 결국 불황을 낳았다. AI혁명의 중심에 선 빅테크 기업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대척점에 선 많은 산업들이 부진을 겪는 중이다. 전 세계는 유례없는 양극화에 직면했다. 사회경제적 격차가 신분제 수준으로 벌어지면서 생존난이도가 폭등했다. 치솟는 물가와 전쟁에서 비롯된 공급망 불안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호황은 가고 불황이 찾아왔다. 투기가 호황기의 상징이라면 불황으로 인한 침체기의 꽃은 사기다. 투기는 사라지고 이제 사기의 계절이 왔다.
경기가 어려운 시기의 사기는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고 간절한 믿음을 악용한다. 기댈 곳이 없는 계층일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래서 사기 피해자의 대다수는 서민층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판단력은 경제적 여유에서 나온다.
불안한 노후를 해결하고 빠듯한 생활형편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 화를 부른다. 막막한 현실을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벗어날 수 없다. 복권당첨을 제외하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행운은 없다. 인생을 단 번에 역전시킬만한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악마는 늘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기꾼들이 친절하게 건네는 동아줄은 손이 아니라 목에 감긴다.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걱정과 경고를 무시하고 매달리다 보면 인간관계마저 망가진다. 부자를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기꾼은 힘든 삶을 구원하러 온 구세주로 불린다. 간절함은 신앙이 되고 절박함은 신념이 된다. 사기를 저지르는 이들은 화려한 껍데기를 쓰고 있다. 전지전능한 선지자나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천재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카리스마와 신비주의의 탈을 쓰기도 하고 현실을 초탈한 사이비 교주 같은 이미지를 활용한다.
불황은 폰지와 다단계를 섞은 복합적인 투자사기가 극성을 부린다. 사기꾼들은 극초창기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준다. 허황된 사기나 다름없는 아이템을 가지고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탄다. 의심하고 백안시하는 이들이 태반이지만 속는 셈 치고 들어간 초기진입자들도 돈을 번다. 이를 보고 망설이던 사람들은 태세 전환을 하고 밀려들어온다. 소액을 넣었다가 이익을 보고 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빚을 내고 가족이나 지인들까지 끌어들인다. 초창기에 진입한 사람들은 신규진입자들을 상대로 홍보와 간증을 한다.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기정사실이 되면서 점점 종교와 비슷해진다.
폰지가 확장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친목과 외부의 적이다. 친목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가 생겨나면서 집단을 단단하게 결속한다. 눈치 빠른 언론이나 유관기관이 움직이면 탄압으로 규정하고 투자자들을 강하게 세뇌시킨다. 사람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사업확장과 MOU 같은 호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현실화되는 것은 거의 없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사기꾼들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 주기적으로 투자를 가장한 유사수신을 반복하면서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한다. 혁신이나 호재 그리고 혁명 같은 미사여구가 나올 때가 끝물이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투자자들은 마지막 배팅을 한다. 배팅의 결과는 실패와 더 큰 실패 둘 뿐이다. 이기는 선택지는 없다. 모든 것을 다 걸면 결국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폰지형 다단계는 판을 설계하고 기획한 사기꾼만 돈을 버는 구조다. 극초창기에 들어와서 단계적인 상승을 만날 때마다 이익을 실현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초기에 수익을 내면 더 큰 이익을 탐하려다 결국 다 잃는다. 도박과 똑같다. 도박판의 승자는 플레이어나 딜러가 아니라 카지노다. 도박이 사기라서 돈을 잃는 것이 아니다. 앉아있다 보면 계속해서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 잠깐 운 좋게 이겨도 계속 앉아서 배팅하다 보면 결국 돈을 다 잃는다.
남은 절대로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가족도 못하는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당하기 전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할 때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욕망은 시야를 차단하고 분별력을 앗아간다. 사기피해를 입고 나면 그제야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사기를 당하면 이미 늦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떨어진 꽃을 가지에 붙여도 봄은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인 고통 그리고 망가진 일상까지 삶은 순식간에 엉망이 된다.
사기꾼들은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그리고 위태로운 시대의 생존법과 인생역전의 비법을 판매한다. 피해자들은 돈을 주고 궤변으로 만든 쓰레기를 산다. 사기꾼은 손해보지 않는다. 범죄수익을 환수해도 피해자들이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은 사례는 없다. 전관 변호사나 거대 로펌의 비호를 받는다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정의와 명분은 돈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율 세계 최정상 빛나는 대한민국은 호황이나 불황이나 사기가 끊이질 않는다. 사기야 말로 언제나 호황만 있고 불황이 없는 한국의 고유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