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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18. 2024

한국병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가 만든 비극

 10대부터 50대까지 한국인 부동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노인자살률 역시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이 높은 중상류층의 자살률도 증가하는 추세다. 잘살든 못살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국민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질병이나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인 한국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길까?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인 인프라나 전반적인 삶의 질 모두 크게 상향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설문조사 결과를 찾아보면 참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참혹한 지표는 무시할 수 없다. 자살과 관련된 통계와 설문조사는 찾아볼 때마다 매번 충격적이다. 올 7월에 나온 뉴스를 보면 초등학생의 자살률은 무려 몇 년 새 200% 이상 늘어났다. 이제 자살은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국가적 위기로 재정의해야 한다.


 심각성으로 본다면 저출산문제 못지않다. 절망적인 인구절벽시대에 계속해서 자살률이 증가한다면 한국 사회는 조용히 붕괴될 것이다. 위기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70년대 경제위기에 빠진 영국을 부르던 영국병이라는 멸칭이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는 ‘한국병’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등지고 있다. 살아남아 어른이 된 이들 역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남몰래 목숨을 끊는다. 사회적 질병이라는 표현 말고 이 사태를 달리 설명할 만한 단어가 없다.


 뉴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극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자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근처 병원 하나가 갑자기 폐업했다. 방문하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문을 닫은 이유가 궁금했다. 공원을 지나다 아줌마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장이 갑자기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비극은 늘 호재보다 더 빨리 퍼진다. 감정이 결여된 죽었다는 표현을 듣고 직감했다. 며칠이 지나자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다. 사고 혹은 자살은 죽었다는 단정적인 표현이 붙는다. 평범한 죽음과 급작스러운 죽음은 온도차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마지막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죽음 앞에서 학벌과 재산이 무슨 소용일까. 버리고 갈 때는 다 쓸모없는 짐일 뿐이다. 코로나 이후 찾아온 불황은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 불안한 시대는 사람들의 불만을 가중시킨다. 다들 감정에 날이 서있고 다정한 눈길 대신 비정한 이빨을 드러내는 중이다. 불안과 분노가 만든 범죄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혐오가 만든 균열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증오의 이면에는 두려움과 우울감이 가득하다.


 행복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편안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 같다.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와 노후가 불투명한 중장년층. 편안한 죽음을 기대할 수 없는 노년의 삶. 혼자 살아도 힘들고 가족이 있으면 버겁다. 정신없이 살면서 가까스로 현상유지하다 보면 세월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가슴 깊이 뿌리내린다. 전부 다 싫어진다. 나도 세상도 모두 싫어진다. 하나뿐인 인생마저 초라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남들처럼 유행을 따라 살고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내면에 깃든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일시적인 즐거움이 사라지고 나면 마음은 금세 공허해진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남들만큼 노력했는데 행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다. 지난 몇 년 동안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사는 게 힘들어서 지치고 피곤해서 술김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홧김에 튀어나온 말도 아니었다. 모두 살려달라는 구조신호를 몸부림치며 보낸 것 같았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깊이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 기준의 행복은 무엇일까? 몇몇 실험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행복의 유일한 조건으로 돈을 선택한다고 한다. 한국인의 행복은 성공이다. 그 이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물질적인 풍요와 좋은 신분은 사회적인 성공의 결과물이다. 돈과 지위가 주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뼈저리게 경험한다.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많은 돈을 손에 쥐기 위해 경쟁한다.


 적성과 개성은 답안지에 끼워 맞추기 위해 빠르게 포기한다. 그렇게 나를 틀에 맞추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얻은 것들이 주는 기쁨은 정작 오래가지 않는다. 과업을 달성하면 또 다른 과업이 눈앞에 놓여있다. 경쟁과 비교는 끝이 없다. 성공만 쫓다 보니 성취의 즐거움을 모른다. 결과만 보고 달리는 인간은 과정의 기쁨을 알 수 없다. 한국인은 성과를 달성하는 기계처럼 산다. 그래서 무리해서 달리다 보면 기계처럼 망가진다. 기계는 고칠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고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자살률이 증가하는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구조적인 문제와 심리적인 기질까지 다양한 위험요소가 드러났다. 국가차원에서 대책을 촉구하는 요구가 몇 년간 이어졌지만 소용없었다. 여러 번 정권이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사회지도층은 외면했다. 결국 국민들은 본인이 알아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다. 복지혜택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자살예방과 관련한 개혁은 요원한 상태다.


 한국 사회 뼛속까지 들러붙은 비극적인 병폐를 더 이상 덮어둘 수는 없다. 사람이 병들면 결국 사회도 병든다. 사회가 망가지면 사람들은 인간성을 점점 상실하게 된다. 면역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한국병은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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