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는 죽기 전날 이우환의 그림을 병실에 걸었다. 본인의 앨범 <12>의 표지를 장식한 오일파스텔 드로잉이었다. 오랜 친구의 그림을 보며 거장은 눈을 감았다. 화려함 대신 간결함을 품은 이우환의 그림은 떠나는 이에게 고요한 위로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사람은 가고 음악만 남았다. 글을 쓸 때나 책을 읽을 때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연주를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종종 영면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차분한 침묵이 감도는 침대 위에 남겨진 것은 오래된 육신이다. 삶의 마지막 날 세계적인 거장은 조용한 하루를 보냈을 것 같다.
앙상한 가지 위로 내려앉는 봄햇살은 눈부시게 희다. 그래서 마른 나뭇가지가 더 애처롭게 보인다. 떠나기 전에는 누구나 앙상하게 야윈다. 그렇게 점점 가벼워진다. 가벼운 몸은 더 가벼워진다. 평생 입고 있던 육신이라는 옷을 벗고 떠날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비워야 할 것들을 모두 털어내고 나면 사람은 거짓말처럼 작아진다.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마침내 삶으로부터 해방된다.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절이 지나고 나면 하나둘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누구나 마지막이 되면 전부 비우고 가야 한다. 거장인 그도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이우환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렸다. 바람과 우주의 소리를 표현했다는 설명이 참 잘 어울렸다. 그림을 벽에 걸면서 그는 덤덤하게 생애 마지막 날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브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하는 것처럼 평온한 순간이었을까? 천천히 몰려오는 졸음에 의식을 내어주면서 바라본 그림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비움의 미학이 깃든 이우환의 작품을 보며 거장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망막에 맺힌 그림은 말보다 부드럽고 글보다 차분한 위로가 되어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든 음악을 듣고 살았다. 음악이 준 위로와 용기는 큰 힘이 됐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나 그는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갔다. 거장이 평생을 바쳐 완성한 예술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궤적을 남겼다.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함부로 재능을 뽐내거나 과시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카모토 류이치는 빛나는 스타가 아니라 찬란한 아티스트가 됐다. 그가 살아서 추구한 모든 것들은 이제 역사가 되어 짧은 생애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