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식사
추운 겨울이면 간절해지는 음식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왕만두와 호빵. 늦은 귀가길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노점 포장마차의 잔치국수. 한 입만 먹어도 온 몸이 따뜻해지는 동지팥죽. 추위를 이겨내려는 사람의 본능이 입맛을 돋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이면 생각나는 음식들은 날씨가 추울수록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허기를 달래주고 얼어있던 몸을 녹이는 따뜻한 한 끼가 잔뜩 웅크린 마음 깊은 곳까지 데워주는 역할을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끼의 식사가 가지는 역할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좋은 음식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함과 동시에 우리 마음의 결핍까지도 채워준다. 누구나 한번쯤 추운 겨울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한 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유난히 겨울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계절이다. 잃어버린 자신감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한기와 함께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든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드는 혼자라는 기분은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세상은 나를 빼놓고 저 만치 먼 곳에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나만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책 속의 명언에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 마음. 이렇듯 여유를 잃어버린 가난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은 한 끼의 따뜻한 식사다. 늦은 밤 집에 가는 길 노점에서 만난 뜨거운 오뎅 한 입에 꽉 막혀있던 가슴 속의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나서는 길에 차오르던 감정이 자신감과 닮은 것임을 깨닫기도 한다. 우리의 영혼도 배고픔을 느낀다. 소중한 진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가슴 속의 허기는 현실의 온기를 품고 있는 음식을 통해 달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음식을 가리켜 사람들은 소울푸드라고 말한다.
배고픈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온기를 가진 모든 음식이 소울푸드가 된다. 추운 겨울 잔뜩 웅크리고 있는 갑갑한 마음을 풀어주는 따뜻한 음식들 역시 훌륭한 소울푸드다. 소울푸드는 가슴으로 먹는 음식이다. 따뜻한 한 끼가 뱃속을 괴롭히던 허기를 달래고 나면 불안함에 들떠있던 가슴까지 차분하게 진정된다. 먹는 행위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는 순간은 최고의 맛을 느꼈을 때가 아니라 음식을 통해 안정감과 위로를 체험할 때다. 발품을 팔 필요도 없이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정보를 한가득 찾아 볼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에도 여전히 소박하다 못해 투박하고 기교가 아닌 기본에 충실한 음식들이 사랑받는 것은 한 그릇에 가득 담긴 온기가 주는 힘 때문일 것이다. 유명 쉐프의 레스토랑에서 먹는 정찬 코스가 영등포 시장 골목의 순댓국 한 그릇이 주는 위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친숙함과 편안함으로 사람들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소박한 한 끼의 따뜻함은 무엇으로도 쉽게 대체될 수 없다.
살아가는 일이 힘들수록 그 삶을 지탱해주고 위로해 주는 버팀목은 정말 단순한 것들이다.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익숙한 사람들의 한마디. 지치고 고된 일상에서 비롯된 몸과 마음 허기를 달래주는 한 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먹으면서 사람들은 힘든 시절을 살아가고 또 이겨낸다. 쓰러진 무릎을 몇 번이고 일으켜세워 다시 일터로 생활로 복귀하는 수많은 사람들. 포기를 모르는 삶의 의지를 품고 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뜨거운 한 끼의 마법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 될 것이다.
늦은 저녁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잠시 열어둔 창문 너머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우렁찬 목소리가 밤하늘 높이 솟아오르다 멀리 퍼져나가며 남긴 한 마디 “찹쌀떡.” 고된 하루를 보냈을 식구들을 위로해줄 음식을 만난 반가움에 이제 나는 글을 마무리 짓고 찹쌀떡을 사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