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산동 맥도널드 건너편 복권판매점 앞에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서있다. 로또 1등만 10번 넘게 나온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줄을 서서 복권을 산다. 현금구매만 가능한 곳이라 다들 지폐를 손에 꼭 쥐고 있다. 토요일 아침마다 보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늘 신기하다. 주말 아침에 멀리서 차를 타고 올만큼 명당은 가치 있는 곳일까? 범계역 앞에도 1등 당첨자를 여러 번 배출한 판매점이 있다. 금요일 퇴근 시간만 되면 복권을 사려는 직장인들이 몰려든다. 복권은 불황이 없다.
하지만 복권당첨으로 극적인 인생역전을 기대하는 풍토는 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삶을 뒤바꾸는 일확천금으로 취급받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로또당첨금을 전부 쏟아부어도 서울에 브랜드 아파트 한 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본인 명의로 된 집 한 채만 생겨도 인생역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서울은 바라지도 않는다. 강남은 꿈도 꾸지 않는다.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 하나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세상이다.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성공보다 생존에 현실의 무게가 실린다.
지갑 속에 품은 로또는 지루한 일상을 잊게 만드는 작은 피로회복제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결국 휴지조각으로 전락한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복권을 산다. 내 집 장만이 서민의 소원이라면 복권은 서민의 꿈이다. 현실이 각박하고 고될수록 꿈은 달다. 당첨을 상상하면서 다들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는 희열을 느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을 향한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뒤틀린 갈망이나 어두운 욕망보다 소박한 소망에 가깝다. 조금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작은 희망이 로또에 깃들어있다.
중학교 동창은 벌써 13년째 매주 같은 번호로 복권을 산다. 당첨을 기대하는 설렘이 아니라 한 주를 시작하는 즐거움을 돈 주고 산다고 말했다. 행운의 주인공은 단 한 명뿐이지만 복권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잠시나마 작은 행복을 누린다. 쳇바퀴를 돌리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벅찰 때가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착실하게 산다. 불만이나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복권을 사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은 내면의 소망을 실감한다. 쉽게 살 수 있는 복권 한 장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