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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10. 2024

내 취향이 늘 정답이다

 안경도 옷이다. 디자인이 천차만별이라 고르고 수집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몇 년 주기로 돌아오는 유행도 존재한다. 그리고 옷처럼 쓰고 벗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취향도 다양하다. 기분 따라 바꿔 쓰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스타일만 고수하는 사람도 있다. 옷이나 안경 모두 심미안에서 비롯되는 취향이 지배하는 영역에 속해있다. 취향은 애정과 같은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취향은 확고한 기준이 된다. 안경을 쓴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고1이 되면서 처음 맞췄던 반무테 근시안경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골랐다. 범계역 앞에 있는 안경원에서 10만 원 주고 사서 잘 쓰고 다녔다. 그러다 뿔테가 유행하면서 다른 안경을 써보고 싶어졌다.


 검정뿔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정말 많은 안경을 착용해 봤다. 옷을 좋아하는 자칭 옷환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사고팔기를 반복했다. 맘에 드는 안경을 구하려고 중고장터를 매일 들여다봤다. 고생 끝에 손에 넣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곧바로 방출했다. 안경마니아라면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안경중고거래에 미사용신품이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셀럽들이 착용한 안경을 따라 산적도 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트렌드를 따라 간 적도 있다. 특가세일에 혹해서 샀다가 택배를 받아서 써보고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행착오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경험이 쌓이면 뚜렷한 주관이 형성된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도 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의미 없다. 자크마리마지나 크롬하츠 같은 브랜드가 해당된다. 유행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에비에이터 선글라스에서 파생된 투브릿지 디자인이 올해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잠자리 안경으로 불리던 스타일이다. 더 현대에 갔던 날 DITA의 LSA115를 착용해 봤다. 특색 있었지만 지갑을 열만 한 매력은 없었다. 클래식이나 복각이라는 단어에 휘둘리지 않는다. 카피와 벤치마킹의 경계가 없는 안경 디자인에 오리지널리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마케팅이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상술이다.


 옷도 많이 입다 보면 안목이 생긴다. 잘 어울리는 옷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안경도 똑같다. 다양한 디자인을 경험해 보고 모험이나 다름없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안목과 취향이 맞물리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최적화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최적화는 객관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애초에 모든 사람의 맘에 드는 스타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맘에 드는 만족감이 제일 중요하다. 만족감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한창 44나 43 같은 작은 사이즈의 안경이 유행했다. 신발을 작게 신어야 예쁘다는 말이 퍼지면서 사이즈다운이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과 닮았다. 46을 쓰는 사람들도 44 사이즈로 많이 넘어갔다. 안경을 작게 쓰는 유행은 트렌드를 넘어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중고장터에 44 사이즈 안경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시착만 해보고 곧바로 중고매물행로 나온 것이다. 착용했던 안경은 반값이하로 거래됐다. 감가상각은 실패에 지불하는 수업료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미의 기준을 내 기준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수에서 배우고 실패를 통해 깨닫는다.


 만족감을 최우선으로 삼으면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좋은 안경은 없다. 내 맘에 들면 된다. 소재와 만듦새 그리고 브랜드 같은 요소는 취향이다. 우열도 없고 서열을 나누는 것 역시 무의미한 일이다. 얼굴형에 맞는 안경이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안경은 없다. 안면골격은 유형화할 수 있지만 이목구비는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같은 얼굴형이라도 생김새가 다르면 느낌도 변한다. 안경은 내 맘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 딱 두 가지 기준으로 나뉠 뿐이다. 남의 시선이나 기준을 따라 고르면 후회할 확률만 늘어난다. 제 눈에 안경이라도 내 맘에 들어야 애정도 생긴다. 내 취향이 정답이고 내 안목이 해답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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