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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09. 2017

고흐와 별이 빛나는 밤에

희망은 절망 속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계절처럼 익숙하면서도 매번 새삼스레 감탄하게 되는 아름다움. 그런 점에서 고흐의 그림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늘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고흐가 남긴 작품들을 대부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한 점을 꼽으라면 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선택하고 싶다. 밤의 카페테라스나 해바라기,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과 더불어 고흐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는 볼 때 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늦은 밤에서 새벽으로 깊어지는 푸른 밤하늘. 하늘을 가득 채운 커다란 달에서 쏟아져 내리는 달빛. 그 옆에서 달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밝은 별들. 조용한 마을 위로 일렁이는 빛의 물결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삼나무. 캔버스를 가득채운 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은 고요함과 찬란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그림과 별개로 고흐의 삶은 비참했고 생활은 처참했다. 성직자의 길을 걸었던 고흐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작가로서 고흐는 2천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화려한 건물 하나 없는 초라한 마을과 높게 솟은 종탑 아래 불 꺼진 교회는 고흐가 살았던 메마른 현실을 닮았다. 외로운 마을 풍경이 고흐의 가난한 내면을 상징한다면 마을을 내려다보는 커다란 삼나무는 그의 자의식처럼 느껴진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에 상처입고 피폐해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성찰 끝에 내놓은 역설적인 해답. 깊은 밤하늘의 어둠을 뚫고 나타난 찬란한 별과 빛나는 달은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이상을 향한 신념이다. 그림은 작가의 정신과 삶을 담은 기록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별이 빛나는 밤에는 절망 속의 희망을 상징한다. 
  
 화가는 그림 속에 메시지를 담는다. 그 메시지에는 화가 자신이 살아온 흔적과 살면서 느낀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은 떠나고 천직이라 믿었던 본업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고흐. 긴 방황 끝에 정말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일을 선택했지만 누구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로 망가진 내면은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자리 잡았고 인생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동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미워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그는 그림을 그렸고, 물려줄 재산 하나 없이 오직 그림만 남겼다. 아름다움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이었지만 오늘 날 고흐가 남긴 그림들은 세기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인정받고 있다. 평가조차 받지 못했던 무명화가에서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는 고흐. 그의 그림 속에 담겨있던 희망을 향한 간절함은 오랜 세월이 흘러 끝내 이루어진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한 때 외면 받을 수 있으나 끝내 인정받는다. 예술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 일이다. 처절함과 치열함 그리고 진실 된 열정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가치와 평가를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태양처럼 밝고 환한 빛을 품고 있다. 절망적이었던 현실을 살다간 고흐는 어두운 밤하늘을 그릴 때면 늘 풍성한 별빛을 함께 그려넣었다. 평생 동안 고독과 고통에 시달렸으나 그의 그림 속에는 항상 찬란한 희망이 담겨있었다. 인간의 위대함이란 뛰어난 업적과 화려한 성취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뤄지지 않을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열정. 닿지 않는 별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리는 부질없어 보이는 일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계속해나갈 수 있는 신념. 이뤄지지 않은 꿈이었음에도 평생을 바쳤다면 신념과 열정만큼은 진짜다. 그런 삶은 성공적이진 않을지 몰라도 위대하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은 없다. 
  
 삶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절망 속에서 끝까지 희망의 질감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고흐는 위대하게 살다간 인간이었다. 화가이자 작가로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 뜨거움 깊은 곳에는 나는 이제까지 작가로서 얼마나 치열 했는지 돌아보는 부끄러움이 스며있다. 고흐는 진짜 화가다운 화가였다. 그의 예술은 진짜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열정과 신념을 가득 품고 있다. 나도 그런 진짜가 되고 싶다. 볼 때 마다 감동을 주는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것은 화려한 색채와 인상적인 풍경이 아닌 한 인간의 신념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나도 고흐와 같이 내 삶의 신념을 가득 담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 
  
 10년 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눈빛을 품은 자화상이나 밤하늘을 가득 채운 커다란 삼나무가 있는 길. 태양보다 밝고 노란 빛을 뿜어내는 해바라기까지. 사진으로만 봤던 고흐의 그림들을 보며 기뻤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는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때의 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가 소장되어있는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며 핸드폰 스크린 너머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고흐의 그림이 걸려있는 메트로폴리탄에 내 그림을 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평생 동안 닿지 않는 저 먼 곳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던 고흐. 이제 내가 그가 쏘다 남긴 화살을 받아들고 성실하게 활을 쏘아야할 차례다. 이뤄질 때 까지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끝까지.


*그림: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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