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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1. 2017

전통은 없고 혁신만 있다

더 이상 추억의 과자는 없다

 겨울 특히 연말이 가까워오면 팀 버튼이 만든 영화들을 자주 본다. 개성 강하고 엉뚱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연말분위기랑 제법 잘 어울린다. 최근에 빅피쉬와 빅아이즈를 연달아 본지라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봤다. 사탕과 초콜릿 그리고 과자로 만들어진 공장 내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뜻하지 않게 나는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과자와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구조물들이 썩지 않고 멀쩡한걸 보니 방부제를 엄청나게 넣은 게 분명해.’라는 정말 어른다운 생각. 동화적인 상상과 순수한 식욕이 어우러지며 감탄을 자아내야할 부분에서 방부제 따위를 떠올린 나는 정말 지나치게 어른스러웠다.
  
 어린 시절에는 과자라면 달거나 짜거나 비싸거나 저렴하거나 다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돈을 주고 과자를 사먹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달콤한 음식 자체를 잘 안 먹는 데다 어쩌다 먹게 되더라도 과자는 두어 개, 초콜릿은 하나 정도면 충분하다. 과자와 빵을 달고 살았던 내가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못 먹는 어른이 될 줄은 몰랐다. 어렸을 적 나는 밥은 걸러도 과자는 하루도 빼먹지 않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동전 몇 개를 손에 꼭 쥐고 슈퍼에 가면 나는 늘 한참을 고민했다. 다양한 곡물이 들어간 썬칩, 찍어먹는 케첩이 들어있던 야채타임, 한 봉지로 둘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던 양파링까지. 1000원이면 과자를 세 봉지를 사고 100원이 남았던 90년대는 과자가 밥보다 훨씬 더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루 용돈이 300원이었던 나는 그래서 늘 과자를 고르는데 신중했다. 어제 먹었던 과자는 고르지 않았고 달콤한 쿠키보다는 주로 짭짤하고 자극적인 스낵을 선호했다. 새우깡이나 치토스 같은 스낵이 양이 꽤 많았다. 그 시절에는 일단 과자는 양이 많은 게 중요했다. 맛보다 양이 우선순위에 있었다. 딱 한 가지 예외로 과자 안에 들어있었던 따조나 스티커 같은 증정품이 있다면 양이 적어도 괜찮았다. 지금은 수집하는 데 전혀 취미가 없지만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과자나 빵을 먹으면 얻을 수 있었던 스티커나 장난감을 열심히 모으는 평범한 어린 애였다. 과자도 먹고 수집도 하고 일석이조의 기쁨을 주는 과자들이 그 땐 정말 많았다. 문방구 앞에 있는 오락기에 100원을 넣으면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콩알만 한 과자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절이었다. 
  
 가끔 대형마트에 가면 어렸을 적 자주 먹던 과자들이 새롭게 리뉴얼되어 판매되는 것을 본다. 고급스러운 포장지가 덧입혀지고 양도 확 줄어든 모양새가 영 어색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한 번 사먹어 본 뒤로 두 번 다시 구매하지 않았다. 지금은 단종 된 과자들이 그럴 때면 종종 생각난다. 원가나 인건비가 상승한 것과 과자의 양이 줄어드는 상관관계의 진실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먹던 과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유기농 재료를 쓰고 트랜스 지방을 줄이고 첨가물은 뺐다고 광고하는 요즘의 과자들은 영 매력이 없다. 애초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 되는 완제품인 과자에 기대하는 건 ‘위생’이지 ‘건강’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 과자를 먹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차라리 운동을 하지. 가공식품인 과자와 대척점에 있는 건강을 마케팅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제과회사들의 센스가 탁월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첨가물을 빼는 김에 질소도 좀 빼면 더 좋았을 텐데. 
  
 다양한 마케팅 방식이 제과 업계에 활용되면서 과자시장에도 한 시대를 풍미한 트렌드 들이 있었다. 웰빙 붐을 타고 검은 깨나 검은 콩을 넣은 과자들이 나오기도 했고 건강함을 내세운 닥터 유 같은 브랜드 속의 브랜드도 등장했다. 인기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포장지에 떡 하니 등장하는 제품들도 있었다. 국찌니빵이나 핑클빵은 90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엑소과자를 보고 역사와 유행은 반복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빵과 과자들이 단연 인기였다. 전국의 학생들이 매일 같이 빵을 먹어가며 모았던 포켓몬스터와 디지몬 스티커를 나도 열심히 모았다. 지금은 다 어디가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봉지를 뜯어 빵을 꺼내 물고 스티커를 확인하는 설렘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비해 넉넉한 양과 저렴한 가격도 꽤 합리적이었다. 
  
 현재와 과거를 동일선상에서 비교 한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추억의 보정을 걷어내고 물가상승률 같은 경제적인 논리를 덜어내도 요즘의 과자는 매력이 없다.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과자들 역시 그 때만큼 정이 가질 않는다. 내가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과자들이 나보다 더 많이 변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혁신과 변화로 보기에는 사려 깊은 고민과 배려가 보이지 않았다. 한결같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변할 거라면 소비자들의 발걸음에 맞춰주는 센스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저렴하고 든든해서 자주 사먹었던 다이제의 최근 가격을 보고 정말 크게 놀랬다.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추억에 칼질을 해대는 건 그만두고 화이트치토스나 먹물새우깡 같은 것들이나 부활시켜주면 좋겠다. 
  
 맛은 추억이다. 오래된 추억 속에 남은 과자들만큼은 예전 그대로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케팅에서 내세우는 새롭게 달라진다는 표현은 가격을 올리거나 내용물을 줄인다는 뜻이다. 가격은 올라가고 양은 줄어들고 그럼에도 맛은 예전 같지 않으니 추억을 생각하며 한두 번 먹고는 다시 손을 대지 않게 된다. 트렌드에 발맞춘 제품군과는 별개로 오래된 과자들은 하나의 클래식으로서 명맥을 유지시켜줬으면 좋겠다. 급변하는 한국에서 변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건 역시나 무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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