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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7. 2017

편식은 취향이다

좋은 건 끝까지 좋고 싫은 건 항상 싫다

 아침을 거르고 급하게 일을 하러갔던 나는 돌아오는 길에 단골 분식집에 들렀다. 늘 먹던 참치김밥을 두 줄 주문하고 단무지를 빼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김밥에 단무지를 꼭 빼고 먹는다. 김밥과 라면을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단무지 역시 먹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무절임의 한 종류인 치킨무도 전혀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고등어조림에 들어간 무나 국에 들어간 무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단지 소금에 절인 무를 싫어하는 것뿐이다. 나름 이유 있는 편식이다. 아예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가려 먹는 거니까. 절인 무에 관한 나의 편식처럼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본다. 
  
 중학교 동창인 친구는 생굴을 정말 좋아하면서 익힌 굴은 입에도 대질 못한다. 익히면 비린내가 심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면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디자이너 동생은 당면만은 식감이 이상해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찜닭의 당면을 죄다 덜어냈었다. 초콜릿은 좋아하면서 누텔라를 싫어하는 친구도 있었고 회사 다니던 시절 만났던 한 동료는 구운 생선을 뼈째 씹어 먹었지만 회는 단 한 점도 먹질 못했다. 같은 재료와 비슷한 맛을 지닌 음식이라도 요리법과 형태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다. 음식에 대한 취향은 숨길 수 없는 것이기에 이유 있는 편식은 항상 일관된 반응을 불러온다. 싫은 건 정말 어떻게 해도 싫은 거다. 
  
 아이나 어른이나 싫어하는 음식 앞에서 작아지는 건 똑같다. 권유하고 회유도 해보고 먹으면 좋은 이유까지 늘어놓아본다 한들 싫어하는 음식을 자진해서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푸드뱅크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르신께 빵과 도넛을 나눠드리는 일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한 분께 슈가파우더가 잔뜩 묻은 잼이 든 도넛을 드리자 ‘나는 잼은 싫어서. 혹시 초코 있으면 그걸로 좀 줘.’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때 음식에 대한 취향이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성이란 생각을 했다. 맛은 같아도 맛이 품고 있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똑같은 단맛이지만 잼이 가진 향기로운 단맛은 싫어도 초콜릿의 부드러운 단맛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므로 나는 초콜릿이 가득 든 도넛을 골라 건네 드렸었다. 편식에는 이렇듯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반대로 자신만의 애정이 듬뿍 담긴 개성 넘치는 음식 취향 역시 이유 있는 편식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나를 제외하고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나는 피자를 우유와 함께 먹는다. 우유가 품고 있는 부드러운 맛이 자극적인 향신료와 양념들을 중화시켜주면서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든다고 종종 설명해보지만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해와 존중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좋아하고 만족하면 그만이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먹어?!’라는 주변의 만류와 야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우유와 피자의 조합을 즐긴다. 유형은 다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음식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난히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기만 하거나 혹은 찍어먹기만 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즐기는 것 역시 뚜렷한 하나의 취향이다.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확고하면서 동시에 쉽게 변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좋은 건 언제나 좋고 싫은 건 어떻게 하든 싫다. 음식에 관한 취향은 그래서 좋든 싫든 솔직하고 늘 직설적이다. 달디 단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가 갑자기 내일부터 믹스커피를 익숙하게 마시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억지로 먹는 순간부터 음식으로 인해 느끼는 만족감은 사라지고 기쁨은 자취를 감춘다. 적절한 동기부여와 극적인 인식의 개선이 없다면 음식에 관한 취향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편식에는 이유가 있다. 대중적인 취향과 조금 동떨어진 특이한 맛을 추구한다거나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식습관은 존중받고 배려 받아야 한다. 식사의 본질적인 목적은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고 신체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측면으로 본 목적이다. 먹으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기쁨. 그것이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다. 음식을 가려먹는 습관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즐기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편식이지만 가장 극대화된 기쁨을 느끼기 위한 비법일 수도 있다. 단순하게 바꿔 말하면 단무지가 든 김밥보다 빠진 김밥을 나는 훨씬 더 맛있게 먹는다. 콜라와 피자를 곁들여먹으면 한 판을 금세 먹어치울 수는 있겠지만 우유와 함께 먹을 때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는 없다.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모두 더 큰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취향이다. 즐거운 식사가 주는 행복을 위해 취향이 존재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받지만 싫어하는 음식이나 맛에 대한 대화는 다소 배척받는 것 같다. 사실 맛있게 먹는 법만큼이나 싫어하는 맛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에 대한 취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예전에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본 기억이 난다.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오이를 싫어한다고 댓글로 고백을 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취향만 존중받고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취향은 다소 홀대 받는 분위기가 개선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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