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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26. 2017

중독은 악습이다

술과 도박 그리고 과소비

 오랜만에 받은 메시지에 별일 없이 잘 지내냐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이는 상대방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다. 눈치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는다. 친한 동생이 보낸 메시지에 무슨 일이 있냐는 답장을 건네자마자 옆의 숫자 1이 사라졌다. 동생은 최근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며 집에서 할 만한 운동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식사는 제때 하는지 잠은 충분히 자는 지 그리고 음주는 여전히 많이 하는 지를 물었다. 동생은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에 식욕이 떨어져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대신 술을 매일 마신다고 대답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혼자 한 잔.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친구들을 만나서 한 잔. 주말은 집에서 쉬면서 아침저녁으로 한 잔씩. 
  
 말이 한 잔이지 한 번에 소주를 2병 이상 먹는 다는 대답에 나는 가볍게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매일 술을 마시면 탈이 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자 동생은 술도 쎈 편이고 숙취도 없어서 괜찮다고 했다. 주량과 간 건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을 하려다 말고 나는 인터넷에서 알코올 중독 체크리스트를 찾아 동생에게 보내줬다. 그리고는 높은 점수가 나오면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말 필요한 건 내 조언 따위가 아니라 전문가의 진단이었다. 물론 본인이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어떤 문제든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본인에게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런 자각이 있었다면 애초에 중독에 가까운 음주습관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독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두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중독으로 인한 손실은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며 필연적으로 인간관계에도 타격을 준다. 사람들과의 마찰과 갈등으로 인해 떨어진 평판이나 망가진 이미지는 개선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어떤 유형이건 간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세 가지로 술, 도박, 과소비를 꼽는다. 이 세 유형은 중독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생활을 망가뜨리는 알코올 중독, 신용을 엉망으로 만드는 도박중독,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주는 소비중독. 병명으로 통용되는 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뿐이지 술과 도박 그리고 무절제한 낭비벽을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회사원이었던 시절 같은 팀에 좀 특이한 동료가 있었다. 다소 작은 키의 회사동료는 자신을 꾸미는데 돈을 아낌없이 쓰는 타입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가의 브랜드로 중무장한 그는 월급을 받은 지 10분 만에 남김없이 다 써버리곤 했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며 돈을 모은다고 했지만 그의 지갑은 늘 비싼 옷과 구두를 사느라 텅텅 비어있었다. 살면서 유형은 달라도 근본적으로 소비에 거침이 없는 사람들을 몇 명 알고 있다. 2천 만 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을 끼고 있음에도 신용카드를 돌려막아가며 쓰던 대학동기. 대기업을 다니며 남들의 세 배 가까운 월급을 받지만 한 푼도 남김없이 다 써버리는 동생.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원 없이 긁어댄 카드 때문에 월말이면 끙끙 앓는 친구. 그들을 보며 나는 한심함을 느끼기보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중독은 습관이다. 사람 몸에 밴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속담이 아니라 진리다. 본인에게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더라도 이미 습관화 된 중독은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고칠 수 없다. 문제를 개선하려는 스스로의 의지가 무력화되는 시점에서 이미 중독은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럴 때는 노력이나 의지가 아닌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확률에 의지해서 불확실한 요행을 쫓는 도박 역시 지나친 과소비나 상습적인 음주처럼 삶에 큰 타격을 입힌다. 카지노나 경마장을 생각할 것도 없이 투자라는 명목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작게는 복권에서부터 크게는 주식투자까지 확률을 쫓는 행위의 결과는 소비한 시간과 자금에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도박은 노력과 성실함이 전혀 통하지 않는 분야다. 그래서 간절함이나 절박함 역시 전혀 소용이 없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한 번’이다. 딱 한 번 살면서 확률에 걸겠다면 카지노의 룰렛이 아니라 본인이 품은 꿈에 거는 편이 낫다. 시간과 젊음을 투자해 잃어버리더라도 경험과 추억은 남는다. 휴지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힐 일은 없다. 내일의 행운을 사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파는 일은 당첨 되지 않은 복권을 몇 번 사본 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 위해 한 번뿐인 인생을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확률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런 생각 따위 하지 않겠지만. 
  
 중독은 몸에 익은 악습이다. 한 번 몸에 익은 중독적인 습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 십 년간 지속된 행동이 결심과 의지로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습관을 바로 잡는 데는 적어도 누적된 기간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습관을 고치겠다는 망상이나 본인의 강한 의지로 해내겠다는 고집은 버리는 게 좋다. 차라리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서 악습이 가지는 악영향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런 새로운 습관은 전문가가 진단하고 처방해주는 원칙에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 본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필요한 것은 의지가 아닌 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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