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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렛과 기념품가게 그리고 마트의 공통점

by 김태민

책을 읽고 있는데 문자 알림을 받았다. 아웃렛에서 파이널세일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옷을 한창 좋아했던 시기의 나는 자주 아웃렛에 갔다. 의왕의 제일모직아웃렛과 관양동의 코오롱세이브플라자에 자주 가서 옷을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찜해놓고 최종할인에 돌입할 때까지 기다렸다.

여름시즌은 8월 말 겨울은 2월 중순이면 마지막 세일이 시작된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은 충동을 자극한다. 시간을 내서 왔는데 뭐라도 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거를 뒤적인다. 그러다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 코트를 무턱대고 산 적이 있다. 그 후로 아웃렛에 가는 횟수는 크게 줄었다.


로로피아나 원단의 투버튼 코트였는데 택에 붙어있는 가격은 160만 원쯤 했던 것 같다. 90% 세일가에 건져서 돈 벌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헤링본 패턴이 은은하게 들어간 차콜 그레이 코트는 정말 고급스러웠다. 이자이아나 라르디니 같은 이탈리아 브랜드 특유의 날렵한 선이 돋보였다.


안감은 밀크티가 연상되는 색감의 레이온과 실크였다. 스트라파타 단추가 적용돼서 라펠의 곡선도 아름다웠다. 바르카 포켓의 곡선도 맵시가 있었다. 등판은 액션플리츠 같은 라인이 잡혀 있어서 입고 벗기도 편했다. 정말 멋진 코트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다시 입어봤더니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소매와 어깨 그리고 기장도 내 체형에 묘하게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브랜드, 옷감, 가격만 보고 정작 옷을 입었을 때의 인상을 고려하지 못했다. 아웃렛을 4년쯤 다녔던 시기였는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제대로 수선을 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클 것 같았다. 강남에 있는 업체에 문의했더니 수선비로 20만 원을 불렀다.


결국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 보관만 하다가 코로나 때 당근마켓으로 팔아버렸다. 마지막 세일이니까 뭐라도 사야겠다는 강박은 충동구매로 이어졌고 결국 후회만 남았다. 애매하다 싶을 때는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크게 실감했다. 살면서 이런 순간들을 종종 경험한다.


미술관이나 관광지에서 굿즈나 기념품을 고를 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가격이 너무 싸서 옷을 살 때. 딱히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마트마감세일에 헐값에 집어올 때. 맞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은 돌아서면 곧바로 후회로 변한다.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은 냉장고에 자리만 차지하다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기념하려고 산 물건은 대게 예쁜 쓰레기로 전락한다. 싸다고 덜컥 산 옷은 집에 오면 돈 주고 산 짐이 된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나를 흔드는 것은 미련이다. 미련은 사람을 미련하게 만든다. 곰은 미련해도 귀엽지만 사람은 미련 앞에서 늘 추해진다. 지갑을 여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소비다.


너무 멀리 보거나 너무 가까운 곳만 보면서 충동이나 미련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만약은 없다. 언젠가는 멀다. 혹시는 너무 추상적이다. 판단의 기준을 현재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질척이면서 들러붙는 미련을 가볍게 털어낸다. 기념하고 기억하고 싶은 바람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에 담는다.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사봐야 결국 짐이다. 음식은 가성비가 아니라 먹고 싶을 때 산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삶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갈 일 없는 아웃렛에서 온 문자를 삭제했다. 옷장도 냉장고도 삶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가벼워졌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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