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안도서관을 다녀왔다. 겨울은 추리소설 보기 좋은 계절이다. 로라 립먼이 쓴 <호수 속의 여인> 도입부가 마음에 들어서 빌려왔다. 나가사키 타카시의 신간도 골랐다. 신청도서로 넣으려고 했는데 날 대신해서 누군가 주문했나 보다.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읽고 싶은 책을 매달 3권까지 신청할 수 있다. 연말연초는 경황이 없어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번 달은 미리 신청을 해둬야겠다. 책을 달고 살지만 정작 책은 거의 사지 않는다. 맘먹고 책을 고르다 보면 결제금액이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책은 늘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다.
책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지만 책을 사는 데는 사실 큰 흥미가 없다. 좋아하는 책은 소장하는 것보다 자주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책을 하나둘씩 들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돈도 많이 들지만 무엇보다 둘 곳이 없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늘 책이 잔뜩 쌓여있었다.
목사인 아버지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을 샀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내게는 책이 짐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버리고 정리했지만 아직도 작은 방에는 책장이 두 개나 방치되어 있다. 성장환경은 성장과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빵가게재습격>을 좋아한다.
예전에 나온 구판은 사이즈가 작았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코트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즐겨 읽었다. 예비군 훈련 갈 때 가지고 간 적도 있다. 10번쯤 읽고 나서 동네 교회의 작은 도서관에 두고 나왔다.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으므로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양도한다.
그렇게 감명 깊게 본 책들을 전부 다 떠나보냈다.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작은 책장은 몇 년 전쯤 사라졌다. 책을 다 비우고 나서 책장도 처분했다. 소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거나 빌려 읽거나 별다른 차이는 없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방에 책 한 권 없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걸어서 6분 거리에 만안도서관이 있다. 성결대 도서관도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다. 주민센터 북카페는 걸어서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도서관이 내게는 거대한 책장이나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사방천지에 새가 가득한데 굳이 새장이 필요할까?
애착은 있지만 집착은 없다. 하지만 책을 소장하면서 수집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수집가와 장서가들은 도서를 주로 기증하는 고마운 이들이다. 내게는 오래된 은인과 같다. 책에 둘러싸여서 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참 좋아했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책을 빌려 읽는 것이 습관이 됐다.
최근 몇 년간 새 책을 사서 읽은 적이 몇 번 없는 것 같다. 신간이 몇 달쯤 지나서 도서관에 입고되면 그때 빌려 읽는다. 1년에 적어도 100권 이상 책을 읽지만 정작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일은 드물다. 선물은 하려고 구입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를 위해 책을 사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교보문고에 가도 의자에 앉아서 책만 읽고 돌아온다. 글로 쓰고 보니 나는 꽤 나쁜 손님일지도 모르겠다. 서점 입장에서는 얌체고객의 전형이 아닐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독서습관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버릇이나 습관은 이름과 같다. 한 번 붙으면 삶에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선물할 만한 책을 사는 걸로 미안함을 대신하기로 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골랐다. 운 좋게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상태최상인 중고책을 발견했다. 포장은 생략했다. 브리프케이스나 핸드백에 들어갈만한 작은 책이 선물하기 제일 좋다. 주문한 책은 내일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픽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