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성결대로 가는 집 앞 2차선 도로 위에 차들이 가득했다. 성결대사거리 너머로 밀려있는 차량행렬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날카롭게 클락션이 울렸다. 대학로가 막히면 안양로를 오가는 다른 교통행렬까지 마비된다. 성결대학로 말고 바로 옆에 있는 문예로로 돌아가면 막힐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예외 없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다들 내비게이션을 믿고 따라간다. 티맵이든 카카오맵이든 안내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내비를 전적으로 의지한다. 다른 길을 찾으려는 시도대신 사람들은 꼬리물기를 선택한다. 생각 없이 그냥 대세를 따라가다 보면 곤란해질 때가 있다.
다 같이 도로 위에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있다. 남 탓을 할 필요는 없다. 모두의 책임이다. 다음 신호를 받아서 넘어가도 될 텐데 앞차에 바짝 붙어서 기어코 꼬리를 문다. 길어야 2,3분 차이일 텐데 악착같이 달려든다. ‘빨리빨리’는 세대가 달라져도 DNA 속에서 희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논리일까? 아니면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겠다는 심리일까? 어느 쪽이든 여유가 없고 조급해 보인다. 꼬리물기는 남들 따라가는 군중심리와 어떻게든 손해 보기 싫다는 이기주의의 교집합이다. 교통체증의 대부분은 끼어들기, 차선변경, 꼬리물기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너무 급하다. 늦으면 손해 보고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이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1분이라도 빨리 가려고 애를 쓰고 앞지르기 위해서 기를 쓰고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동반하는 일종의 도파민 중독일까? 소확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위험천만한 행동이 일상화되어 있다.
각자 목적지가 다른데 왜 굳이 차선 위에서 다들 경쟁을 하는 걸까? 빨리빨리와 무한경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운전할 일이 없는 나는 조수석에 앉을 일이 많다. 조수석에서 보는 풍경 속으로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뛰어들 때가 있다.
제정신인가 싶은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극한의 이익을 추구한다. 경각심이 없다.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도로 위의 법칙을 무시한다. 스스로를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영화 장르가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다른 차량을 제치고 나서 이겼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본 적 있다.
핸들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유튜브를 보면서 운전한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그의 명복을 빌었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들여다본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고집과 주관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꼭 사고를 친다. 입 밖으로 조언이나 비판을 꺼내지 않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도로 위에서 이득을 보려는 이들의 기행을 볼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 크고 작은 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하지만 발언의 신빙성은 낮다. 지금까지 걸리지 않았던 것뿐이다. 운전은 습관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운전하는 태도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
사람들의 습관은 도로 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운전습관은 숨길 수 없다. 운전대를 잡으면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낸다. 다들 본능에 충실한 동물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도로는 문명의 상식 대신에 야생의 약육강식이 통하는 뒤틀린 전쟁터다. 승자와 패자는 없다. 모두 생과 사를 오가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