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건 반드시 꼭 먹어야만 한다
기록적인 한파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칼바람을 잔뜩 맞고 들어와 뜨거운 물로 씻고 두꺼운 후리스와 포근한 극세사로 만든 수면바지를 갈아입었더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가늘게 눈을 뜨고 의식을 되찾아보니 한밤 중. 창밖으로 겨울밤 특유의 새까만 어둠이 내려와 있는 걸 보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1시 반. 까치집이 자리 잡은 뒷머리를 손으로 눌러 수습하고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인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놓고는 침대에 잠깐 누운 새 잠들어버릴 줄이야. 노트에 적어둔 메모를 보고 하얀 모니터 화면 위에 몇 문장 써내려가던 중 나는 갑작스럽게 허기를 느꼈다. 저녁을 적게 먹고 들어온 탓인지 배가 고팠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둔 바나나와 호밀빵이 식탁 위에 있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밥을 차려 먹을까 라면을 끓일까 고민하던 나는 편의점도시락을 생각해냈다. 전자렌지에 데워져 나온 도시락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나니 배고픔과 식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편의점도시락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먹는 편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평소에 즐기는 음식이 아님에도 갑자기 떠오르면 꼭 먹어야겠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오는 때가 종종 있다. 오늘은 편의점도시락이 그런 메뉴였다. 학교가 모여 있는 동네의 특성상 편의점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새벽 2시의 기온은 영하 12도였다. 밖에선 찬 겨울바람이 창문을 뒤흔들며 나뭇가지들을 쓸고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편의점도시락을 정말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먹어야겠단 생각이 일단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이상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기가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 후 나는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도시락코너에서 불고기도시락을 골라 계산을 하고 따뜻하게 데우고 한 숟가락 크게 떠서 한 입 하는 순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3800원짜리 편의점도시락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진미였다. 한 번씩 정말 어쩌다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떠오른 음식을 먹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는 때가 있다. 지난 가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고 막차를 타고 집에 오다 갑자기 빅맥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맥도날드는 한참 떨어져있었고 1분만 걸어가면 집에 도착하는 상황. 그럼에도 나는 발길을 돌려 심야할증택시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빅맥을 사먹었다. 새벽 1시에 사서 고생을 해가며 먹은 그 빅맥은 올해 먹었던 가장 맛있는 햄버거였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작년 봄에 한창 밀크티를 즐겨 먹던 시절.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다 밀크티를 먹고 싶어서 마트에 들렀다. 다양한 음료들이 구비되어있었지만 내가 찾는 데자와 밀크티는 없었다. 근처에 있는 다른 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 그냥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불현듯 ‘꼭 먹고 말겠다!’는 식욕이 올라왔다. 결국 나는 마트 4곳과 편의점 7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데자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거주하는 8동이 아닌 6동에 있는 처음 가보는 편의점이었다. 장장 40분간 발품을 팔아가며 손에 넣은 데자와는 정말 맛있었다. 아이러니한건 그렇게 한 캔을 단숨에 비우고 나서는 두 번 다시 밀크티를 사먹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서 고생해서 간절했던 음식을 먹고 나면 그 강렬한 만족감 끝에 은근한 허무감이 나타나는 것 같다. 택시를 타고 달려가 사먹었던 빅맥을 맛본 이후 적어도 세 달간 햄버거는 입에 대질 않았던 것도 기억난다. 아마 오늘 먹은 편의점도시락 역시 몇 달 혹은 그 이상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먹는 동안 정말 맛있어서 행복했다. 어떤 음식이든 음식은 결코 다른 음식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맛이 있고 없고 가격이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다. 음식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 평양냉면이 먹고 싶을 때 함흥냉면을 먹는다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찹스테이크를 원하는 사람에게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운 맛의 티본스테이크를 준다고 하면 좋아할까? 식욕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순수한 욕구다. 식욕에는 타협이 없다. 음식이 가지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또렷한 정체성을 느끼고 싶은 것이 식욕의 본질이다.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 음식을 먹어야만 완벽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식욕에는 최상의 플랜B나 합리적인 대안이 없다.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 짜파게티를 먹게 되면 오히려 짜장면을 먹고 싶은 욕구만 더 간절해지며 허전함만 남는다. 포만감은 들겠지만 만족감이 없는 포만감은 반쪽짜리나 다름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음식의 특성을 합리적으로 조합한 정반합의 결과물인 짜왕이 있지만 좋은 대안은 아니다. 정체성은 음식의 질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갖는다. 짜장면과 짜파게티 그리고 짜왕은 모두 전혀 다른 음식이나 마찬가지다.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썩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를 납득시켜가며 먹을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리화일 뿐 식욕은 대체 될 수 없다. 그래서 식욕은 가장 솔직하고 단순하지만 까다로운 욕구다. 갑자기 생각난 편의점도시락 대신 라면을 먹었다면 나는 별로 달갑지 않은 포만감과 함께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배고픔과 식욕을 충분히 달랜 후 밀려오는 행복감은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괴로움을 잊게 만들었다. 까다롭고 번거로웠지만 행복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늦은 밤의 기행은 나쁘지 않았다. 자주면 괴롭겠지만 가끔이라면 뭐 이런 경험도 나만 아는 추억거리가 될 테니까. 집으로 돌아와 타협하지 않는 식욕을 달래준 오늘의 편의점 나들이를 글로 적었다. 글로 써서 남길만한 멋진 내용이나 인상적인 경험담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삶의 일부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날들이 모여 인생을 이루고 있으므로 재미있는 순간의 기록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