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밤늦게 비가 내렸나 보다. 바닥이 살짝 젖어있다. 수리산 이마에 옅은 안개가 꼈다. 찻물을 올렸다. 제일 좋아하는 찻잔에 작설차 티백을 넣었다. 주전자 끓는 소리가 나기 직전에 가스불을 껐다. 뜨거운 차보다 따뜻한 차를 선호한다. 차 중에서 작설차를 제일 좋아한다. 언제 마셔도 맛있다. 작설차는 고소하고 깨끗한 맛이 난다. 코 끝을 스치는 차향은 금세 사라진다. 청아한 아침의 안개 같은 상쾌한 향이다.
환한 햇살과 맑은 수분감이 연상되는 차다. 늦봄이나 초여름에 작설차를 자주 마신다. 맛도 계절을 탄다. 5월은 작설차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햇살도 좋고 공기 중에 습도가 적당해서 바람이 늘 상쾌하다. 창문을 열어두고 남실바람을 맞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명학공원은 봄이면 벚꽃이 한가득 핀다. 예전에는 옥상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꽃을 보면서 차를 마셨다. 지금은 집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서 의자를 치웠다.
그래도 창 밖으로 화사하게 핀 철쭉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는 언제 마셔도 좋다. 맛있는 과자를 사면 홍차부터 찾는다. 녹차는 크림치즈와 잼을 곁들인 견과류와 궁합이 좋다. 재스민차나 우롱차는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분위기에 따라 차맛도 달라지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면 커피를 즐기지만 혼자 있을 때는 주로 잎차를 고른다. 커피는 대화를 할 때 즐기고 녹차나 홍차는 생각을 정리할 때 찾는다. 지난밤에 잠을 설쳤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일찍 깬다.
걱정이나 고민거리를 이불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오랜 원칙이 깨졌다. 뜬 눈으로 새까만 천장을 바라보면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진다. 잡념이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꼬리물기를 하는 동안 피로가 눈처럼 쌓였다.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비우려고 깨끗한 아침공기를 쐬면서 작설차를 마셨다. 산뜻한 맛이 혀끝을 적셨다. 쓴맛이 살짝 감돌다 고소한 끝맛으로 이어진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혀가 즐거우면 뇌도 웃는다.
감각이나 본능은 참 단순하다. 사람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복잡하게 어질러져있던 가슴과 머리를 차 한잔으로 개운하게 정리했다. 아침도 가볍게 먹어야겠다. 둥굴레찻물에 따뜻한 밥을 말았다. 김가루를 살짝 올리고 닭고기조림을 얹어서 맛있게 먹었다. 뱃속이 편하면 마음도 편하다. 부담 없는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까지 마쳤다. 옅은 안개는 사라지고 투명한 햇살이 길 위에 하얀 연못을 만들었다. 이제 밖에 나갈 시간이다.
티셔츠 위에 얇은 여름용 바람막이를 걸쳤다. 무거운 밤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시작이 좋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