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

by 김태민

오전 10시 현재 기온은 22도다. 일교차는 크지만 초여름날씨다. 잘게 부서진 하얀 햇살조각이 눈가에 닿았다. 빠르게 눈을 감았다.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씻었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가스불을 올렸다. 콩국수 만들어먹기 좋은 날이다. 냉장고에서 어제 산 콩물을 꺼냈다. 끓는 물에 국수를 넣고 거품이 올라오면 찬물을 붓는다. 나무젓가락으로 천천히 저어주다 꺼내서 흐르는 물에 면을 씻는다.


손빨래하듯이 면을 깨끗하게 비벼서 헹궈주면 텁텁한 전분맛과 밀가루 냄새가 전부 사라진다. 그릇에 면을 담고 콩물을 부었다. 채 썬 오이에 후추와 맛소금을 넣고 오이절임을 만들었다. 김치도 잘 어울리지만 맵고 신맛이 고소한 콩국물의 풍미를 덮는 감이 있다. 오늘은 오이절임만 곁들여 먹을 생각이다. 남은 오이는 고명으로 올렸다. 시원한 향을 더하기 위해서 오이를 콩국물에 잘 섞어준다. 콩국이 면에 충분히 스며들도록 잠시 기다렸다가 먹는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살짝 밍밍하다 싶을 때 오이절임을 집어먹는다. 면을 다 먹고 국물에 설탕을 살짝 넣어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어렸을 때부터 콩국수를 정말 좋아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콩국수가 참 맛있었다. 만드는 법을 엄마한테 배워서 직접 콩을 갈아서 해먹은 적도 있다. 여름만 되면 거의 매주 콩국수를 먹는다. 작년 겨울 맛집 인플루언서로 선정되고 나서 단골집들을 요새 다시 방문하는 중이다.


제일 좋아하는 콩국수 맛집인 성원멸치국수를 최근에 다녀왔다. 서리태를 갈아 만든 콩국수의 맛은 여전히 훌륭했다. 올해는 나도 서리태콩국수를 만들어 먹어봐야겠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입맛도 달라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취향도 있다. 콩국수는 30년이 넘도록 나의 베스트메뉴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콩을 정말 좋아했다. 콩자반만 놓고 밥 한 공기를 비울 정도였다. 엄마는 국수를 좋아했다.


주말만 되면 빼놓지 않고 멸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참기름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비빔국수는 엄마의 시그니처메뉴였다. 가족은 입맛마저 닮는다. 콩으로 만든 음식은 다 좋아한다. 국수도 마찬가지다. 추운 늦가을이 되면 멸치국수를 자주 찾는다. 초여름부터 콩국수를 찾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도 입맛은 예전 그대로다. 살아온 날들이 모여 취향이 된다.


입맛은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행복한 식사에 관한 추억이 취향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국수를 나눠먹었던 지난날이 그립다. 아련함과 그리움이 밴 맛이라 자주 찾게 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콩국수는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맛있는 콩국수를 먹으면서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는 것 같다.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평범한 순간들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소중한 날들이었다. 음악을 들으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처럼 음식도 타임머신이 된다. 덕천풍물시장에서 엄마랑 나란히 앉아 함께 먹던 콩국수가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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