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메뉴는 계란볶음밥이다. 비빔밥과 볶음밥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조리와 정리가 간편한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하는 취향은 나이가 들어도 그대로다.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동일하다. 먹기 편하고 영양소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실속과 맛을 다 잡은 완벽한 음식이다. 자주 만들다 보니 손에 익어서 그런지 준비부터 조리완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어제 냉장고에 넣어놨던 찬밥을 꺼냈다.
계란 세 개를 까서 계란물을 만들고 식용유를 두른 팬에 대파를 썰어 넣었다. 따뜻한 밥은 곧장 계란을 끼얹고 섞은 다음 볶으면 그만이지만 찬밥이라 재료를 따로 준비했다.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화력이 약해서 불맛을 제대로 내기 힘들다. 중국요리는 화력이 중요한데 집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요리왕비룡처럼 화끈하게 불을 쓰면서 웍질을 할 수 있는 큰 주방을 갖고 싶다.
요리사를 꿈꾼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 인생 최고의 로망은 좋은 주방을 갖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로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휘슬러사의 조리도구와 식기를 구비하고 천장에 랙을 달아서 와인글라스를 늘어놓으면 멋질 것 같다. 복잡한 인테리어를 배제하고 팬톤컬러의 르크루제 컵을 일렬로 진열해놓고 싶다. 로열코펜하겐의 티 세트도 빼놓을 수 없다.
주방 한가운데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아일랜드 테이블을 설치하는 것은 필수다. 모형이 아닌 진짜 과일을 가득 담은 바구니까지 올리면 로망이 완성된다. 상상만 해도 멋지다. 빌트인으로 커다란 오븐과 업소용 특대 냉장고까지 갖추면 매일 요리할 맛이 날 것 같다. 언젠가 꼭 좋은 주방을 갖고 싶다. 진짜 로망은 녹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은 희미해지고 이상은 점점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로망은 생생한 본래의 색감을 잃지 않는다.
로망은 단순하다. 단순한 구조의 기계가 고장 나지 않는 것과 같다. 짧지만 즐거운 상상에서 빠져나와서 현실로 돌아온다. 딱 하나 남은 베이컨을 자위로 잘게 잘라서 프라이팬에 굽는다. CU에서 사 온 핫바도 조금 잘라 넣었다. 2500원에 나온 PB상품인데 프레스햄만큼 커서 샌드위치 만들 때 넣는다. 베이컨이 노릇노릇해지면 팬 한쪽으로 밀고 찬밥을 추가한다.
숟가락으로 눌러서 적당히 흩어놓은 다음 계란물을 3분의 1 정도 넣고 밥과 함께 볶는다. 살짝 마른 찬밥이 수분을 머금고 풀어지면 남은 계란물을 다 넣어준다. 그리고 제일 센 불로 빠르게 볶는다. 불이 약하면 계란이 익으면서 밥알이 전부 들러붙어서 질척해진다.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먹으려면 불조절이 중요하다. 과감하게 화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가스레인지 불이라 드라마틱한 비주얼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이쯤에서 타협한다.
색감이 노래지면 햄과 베이컨을 같이 섞는다. 그다음 손목스냅을 활용해서 빠르게 여러 번 뒤집어주면 계란물이 밥알에 코팅된다. 동시에 수분이 날아가면서 밥알이 탱글탱글한 볶음밥이 된다. 만테까레와 비슷하지만 원을 그리듯이 스냅을 더 크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팬 한가운데 공간을 만들어서 굴소스를 뿌려준다. 빠르게 볶아서 살짝 풍미를 끌어올린 후에 섞으면 완성이다.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빛을 띠는 볶음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요리는 성취와 만족을 동시에 선사한다. 과정은 보람차고 결과는 행복하다. 요리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성취가 동반하는 행복감이 하루를 풍성하게 만든다. 오늘도 행복한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