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simple is best

by 김태민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것 까지는 이해하겠다. 그런데 왜 하필 맛있으면 바나나일까. 작자 미상의 노래가 다 그러하듯 아마 애초부터 가사에는 별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노래가 전해지면서 누군가가 가사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배나 수박이었는데 바나나가 한창 귀했던 시절이라 바나나가 붙은 걸 수도 있고 바나나를 좋아해서 붙인 걸지도 모른다. 사실 빨가면 사과라는 가사도 의외인건 마찬가지다. 원숭이 엉덩이를 보고 새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떠올린다는 점은 대단히 참신하다. 예쁜 엉덩이를 의미하는 애플힙(apple-hip)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시대를 초월한 창조적인 센스가 들어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사과를 보고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생각했으니 동요 하나가 끼친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한다. 단순한 연상에서 오는 각인의 힘이 참 놀랍다. 사실 단순함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의 근원은 쉬움에서 비롯된다. 복잡하고 심오한 것들은 모두 하나 같이 불친절하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고 해석하는데 꽤 많은 노력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함은 언제나 쉽다. 쉬운 것은 간단한 연상을 통해 머릿속에 이미지들을 새겨 넣는다. 그러다보면 복잡한 연산이나 추론 없이도 본질이 의미하는 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simple is best.’라는 말은 그래서 언제나 정답일 수밖에 없다. 
 
 단순함이야말로 진리다. 그리고 진리는 언제나 이해하기 쉬운 아주 간단한 방식을 통해 전달된다. 원하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갖은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말하는 것보다 정말 말하고 싶은 한 마디를 전하는 편이 낫다. 멋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잔뜩 걸치는 것보다 하나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더 강렬하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잡다한 맛은 전부 덜어내고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에 집중한 요리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 모두 단순한 방식으로 전달될 때 우리는 진리를 경험하게 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피카소는 평생 동안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림으로 사진을 그리듯 사실적인 초기 화풍과 달리 노년으로 갈수록 피카소의 그림은 아이가 그린 듯 단순하고 간결해졌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을 듯 커다란 캔버스에 물감을 가득 칠한 추상화로 유명한 미국의 화가 마크 로스코 역시 단순함에 집중했다. 여러 가지 색을 섞어 추상화를 그리던 로스코는 다양한 색을 배제하고 한두 가지 색깔만 선택해서 그림을 더 단순하게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예술은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반복하는 작업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모두 단순함에 집중했고 끝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전설이 되었다. 간결하지만 가장 직설적으로 진리를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단순함은 소통의 본질이자 표현의 핵심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쉽고 단순한 형태로 본질을 나타낼 수 없다면 의미는 제대로 전달 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말에 너무 많은 메시지가 들어있을 때 듣는 사람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 생각해야 할 때 대화와 소통의 집중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다양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내용을 전달하기보다 몇 마디의 간결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 비유를 통해 돌려 말하는 방식은 언뜻 보면 매너 있어 보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여러 번 생각을 해야 하므로 들으면서 내용을 정리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한 쪽은 혼자서 길게 말하고 다른 한 쪽은 쭉 듣기만 하면서 이해하려 애쓰는 모양새가 된다. 대화가 두 사람 사이를 제대로 오고가지 못할 때 소통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짧고 간결하게 말할 때 상대방은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바로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된다.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소통에 있어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며 친절한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때 포장하기 위해 신경을 쓴다. 어디에서 본 듯한 표현을 덕지덕지 붙이는가 하면 뜻은 모르지만 있어 보이는 단어를 남발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정작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다. 문장은 거추장스러운 표현들을 덜어내 헐벗을수록 단순해지고 뜻은 명확해진다. 직설적인 표현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멋도 없고 극적인 분위기도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단순함은 쉽고 친절하다. 알아듣기 쉬운 문장은 대화의 장벽을 순식간에 허무는 역할을 한다. 친절함을 느끼게 만드는 간결하고 단순한 표현은 편안한 답변을 이끌어내게 만들고 대화는 그 때부터 제대로 활기를 띄게 된다. 
 
 함께 대화할 때 즐거움을 주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대화방식은 간결하고 알아듣기 쉬운 표현들을 사용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호감과 애정을 갖게 된다. 꾸밈없는 단순함에는 가식이나 거짓이 없다. 단순함은 그래서 솔직하다. 그런 솔직함을 지닌 진실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고 말을 할 때 나는 종종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로 시작하는 동요를 떠올린다. 쉽고 간결하고 단순하고 직설적인 연상이 주는 즐거운 강렬함. 내 글에도 그런 단순함의 힘이 느껴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비우고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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