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내리기

by 김태민

당근마켓에서 블루보틀 드리퍼를 샀다. 로고가 예뻐서 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정말 저렴한 가격에 데려왔다. 홍차를 즐겨마시다 요즘은 드립커피에 빠졌다. 커피맛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선물 받은 드립백커피가 입맛에 잘 맞았다. 맛도 경험이다. 좋은 사용자경험은 구매로 이어진다. 어제 마트에 간 김에 원두와 여과지도 샀다.


머그 위에 드리퍼를 올리고 여과지를 깔았다. 곱게 간 원두를 한 스푼 떠서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붓는다. 팔팔 끓는 물보다 끓기 직전의 온도를 선호한다. 김이 살짝 날 정도면 충분하다. 넘치지 않게 조금 붓고 기다렸다가 다시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드립커피는 첫 향이 제일 좋다. 견과류를 연상시키는 고소한 향과 초콜릿 같은 달콤함이 코 끝을 맴돈다.

향이 풍부한 음식일수록 애호가들이 많은 것 같다. 위스키와 커피 그리고 와인은 향이 맛을 결정한다. 가공방식이나 원산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다채롭게 달라진다. 취향은 섬세한 감각으로 미세한 차이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좋아하는 맛과 향을 탐색하는 여정은 언제나 즐겁다. 술이나 차 모두 쓴맛을 기본으로 하는 음식이다.


단맛이나 짠맛에 비해 쓴맛은 단조롭다. 쓴맛은 흰 도화지를 닮았다. 밑그림은 단순하지만 그 위로 다양한 빛깔의 향이 화려한 그림을 그린다. 강렬한 단맛에서 찾아볼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은은한 여운을 준다. 좋은 차와 귀한 술은 쓴맛 속에 풍부한 향을 품고 있다. 곡우가 지난 후에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작설차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차향이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물 받은 중국산 보이차를 마셨을 때도 그랬다. 고마운 마음이 깃들어있어서 더 맛있었던 같다. 갓 내린 커피는 늘 맛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느긋하게 향을 즐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가짐은 맛을 돋우는 조미료 같은 역할을 한다. 휴식시간에 먹는 음식은 종류를 막론하고 전부 다 맛있다.


가격이나 등급도 맛을 결정하는 요소지만 심리나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먹는 믹스커피보다 코피루왁이 더 맛있을까? 조니워커 블루보다 친구들과 캠핑을 가서 마셨던 코스트코 위스키가 훨씬 더 좋았다. 맛은 혀에서 감별하지만 만족감은 뇌에서 결정한다. 몸과 맘이 편안할 때 먹는 음식이 제일이다.


지인이 선물해 준 케냐 원두는 부드러운 헤이즐넛 향이 마음에 들었다. 어제 마트에서 산 르완다 원두는 진한 초콜릿의 풍미가 돋보였다. 산미와 고소함을 달달한 향이 감싸고 있는 커피가 좋다. 쓰고 보니 아몬드초콜릿이 연상된다. 더운 여름이지만 풍부한 향을 즐기려고 핫브루잉을 골랐는데 선택이 옳았다. 드리퍼를 사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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