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먹는 칼국수

by 김태민

아침에 오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공원 풍경이 차츰 어두워졌다. 짙은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는 꼭 파도소리 같았다. 장맛비를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 오늘 점심메뉴는 칼국수다. 냉장고에서 칼국수 생면을 꺼냈다. 1+1 특가라 고민 없이 샀다. 바지락도 할인가에 나왔는데 선도가 아쉬워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시 내려놨다.


여름배앓이는 고역이다. 조개대신 어묵을 넣어서 감칠맛을 내면 된다. 곱게 간 생선살이 들어가는 어묵도 따지고 보면 해산물이다. 끓는 물에 어묵과 다시마간장을 같이 넣었다. 적당히 끓이고 나서 파와 마늘을 첨가한다. 오래 삶으면 쓴맛이 나는 고추는 마지막에 넣는다. 손으로 칼국수 면을 적당히 풀어준다. 전분가루는 터는 것보다 흐르는 물에 씻는 편이 낫다.


장칼국수는 걸쭉한 국물이 어울리지만 맑은 칼국수는 깔끔할수록 좋다. 어묵을 건져내고 면을 넣은 다음 뭉치지 않게 젓가락으로 젓는다. 오래 삶으면 어묵이 흐물흐물해져서 식감이 떨어진다. 끓어 넘치지 않게 불조절을 하고 기다린다. 애호박을 넣으면 은은한 단맛이 우러나오는데 아쉽지만 오늘은 생략했다. 닭볶음탕을 만드느라 어제 전부 써버렸다.


레시피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꼭 필요한 주재료가 아니라면 괜찮다. 정답은 없다. 내 맘대로 만들고 내 식대로 먹으면 된다. 요리는 높은 자유도를 보장한다. 집에 오븐이 없다면 빵은 그냥 밖에서 사 먹자. 요리연구가의 냉장고에나 있을 법한 재료는 없으면 생략한다. 디테일의 차이가 완성도를 결정한다지만 집에서 혼자 해 먹는 요리는 예외다.


짜면 물을 붓고 살짝 타면 잘라내고 먹는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먹게 되면서 무던함이 생긴 것 같다. 맛있으면 행복하고 맛이 좀 부족해도 어차피 한 끼다. 다음에 잘 만들면 된다. 예전에 비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음식을 대접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맛이 있든 없든 정성이 깃든 따뜻한 요리는 귀하다.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던 까탈스러운 깐깐함은 사라졌다. 진심을 담은 음식은 무조건 감사하게 먹는다.


마음도 맛이다. 요리나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하면서 생활의 지혜를 얻는다. 경험에서 배우고 행동으로 깨닫는다. 삶의 모든 순간이 스승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완성된 칼국수를 그릇에 담았다. 국물을 머금은 면이 입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밀려 들어온다. 어묵을 반찬삼아 먹었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먹는 칼국수는 각별하다. 비 오는 날이면 튀김이나 파전보다 면이 더 생각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장마철이 되면 백숙이나 닭칼국수를 자주 만들어줬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식탁에 둘러앉아 먹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추억보다 좋은 조미료는 없는 것 같다. 갑자기 식욕이 돌았다. 그릇을 빠르게 비웠다. 설거지를 끝내고 조금 쉬었다가 반찬을 만들어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과 떡을 사서 병원에 같이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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