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매일 하루 세끼를 직접 만들어먹는 것은 번거롭지만 제법 보람 있는 일이다. 간장과 고추장 마늘만 넣으면 한식은 그럭저럭 먹을 만해진다. 어제는 두부와 어묵을 사서 조림을 만들었다. 직접 만든 반찬을 냉장고에 채워넣을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병원에도 매일 반찬을 만들어서 가져간다. 점심에는 시금치나물을 만들어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저녁메뉴를 고민하다 손질한 닭을 샀다. 닭볶음탕을 만들어먹기로 했다. 팩에서 꺼낸 닭을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었다. 잡내를 잡으려고 우유에 담그거나 껍질과 지방을 전부 다 잘라내면 뒷맛은 깔끔하지만 깊은 맛이 사라진다. 육류의 풍미는 지방이 결정한다. 닭기름이 품고 있는 고소함과 감칠맛을 걷어내면 맛이 심심해진다. 음식은 건축과 닮았다. 재료가 품은 본연의 맛은 밑그림이 되는 지반과 같다.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을 올려도 쉽게 흔들린다. 기름기는 채소로 잡으면 된다. 간장에 고추장을 풀고 설탕을 약간 첨가해서 양념장을 준비한다. 고춧가루는 고기가 다 익을 때쯤 국물에 푼다. 너무 일찍 넣으면 텁텁하고 쓴맛이 난다.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닭을 살짝 볶는다. 닭기름이 배어 나오면 닭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감자가 들어가면 전분기로 인해 국물이 줄어들면서 물조절이 된다.
양파와 파를 썰어두고 감자는 조각내서 한 번 씻는다. 팔팔 끓을 때쯤 양념장과 채소를 넣으면 끝이다.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위스키를 스푼에 담아서 서너 번 뿌린다. 화력을 끌어올려서 제일 센 불로 3분쯤 가열한다. 위스키는 고기요리를 조리할 때 특별한 풍미를 더해준다. 맛술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아서 애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잘게 썬 청양고추를 더하고 잘 섞어주면 완성이다. 내가 먹을 만큼만 덜어내고 락앤락 용기에 담아서 식혔다. 부모님 몫이다.
만들기도 쉽고 맛도 좋은 닭볶음탕. 초등학생 때 처음 만들어봤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맛있다. 전기밥솥에서 갓 지은 밥을 퍼서 공기에 가득 담았다. 감자와 양파를 밥 위에 올리고 양념이 밴 허벅지살을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육질이 저항감 없이 입 안에서 천천히 풀어졌다.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요리는 합격이다. 재료를 사서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과정은 귀찮지만 맛있으면 괜찮다.
맛만 좋으면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크든 작든 행복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온다. 맛있는 한 끼가 선사하는 행복감은 귀찮음을 이겨낼 만하다. 매콤한 양념이 채소와 닭고기를 감싸면서 입 속에서 어우러진다. 그 사이를 추억이 비집고 들어온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닭볶음탕을 함께 먹었던 장면이 천천히 지나간다. 소중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월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내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맛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닭볶음탕을 먹으면서 수풀이 무성한 오래된 추억 속을 헤집고 다녔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보물찾기 하듯 지난날을 들여다본다. 사소해서 무심코 지나쳤는데 지금 돌아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한가득 쌓여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살펴본다.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함 속에서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행복을 발견할만한 여유를 회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