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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29. 2017

사람과 고양이의 마을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풍경

 늦은 저녁식사를 족발로 해결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족발이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었다. 열심히 쌈을 싸서 신나게 먹다 보니 혼자 족발 대짜를 다 먹어버렸다. 근육량을 늘린다고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식사량이 거기에 비례해서 확 늘어날 줄이야.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강도 높게 운동을 했으니 괜찮다는 합리화를 끝으로 즐거운 식사를 마무리했다. 먹고 발라낸 뼈를 비닐봉지에 담아 바깥에 내놓으려고 현관문을 연 순간 새까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거렸다. 샛노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나는 크게 놀라 반사적으로 현관 앞 신발장에 걸려있던 구둣주걱을 잡고 휘둘렀다. 
  
 그러자 현관문 앞의 전등이 켜지면서 번쩍이는 눈동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오동통한 삼색 고양이 한 마디가 나를 보고 당황했는지 황급히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이 잠겨있었기에 고양이는 뱅글뱅글 돌며 우왕좌왕하더니 계단을 풀쩍 뛰어내려 사라져 버렸다. 나도 놀랬지만 고양이는 나보다 더 놀랬던 모양이다. 고양이인 줄 알았다면 굳이 구둣주걱을 허공에다 휘두르진 않았을 텐데 크게 당황했을 녀석에게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산 아래 있는 동네라 겨울이면 너구리가 주택가로 종종 내려온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눈동자를 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귀퉁이가 조금 찢겨있는 음식물쓰레기봉투가 놓여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나오기 전까지는 뼈만 남은 닭다리 끝에 조금 붙어있는 고기를 먹고 있었나 보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다시 만나면 가방에 넣고 다니는 내 간식이라도 나눠주는 걸로 사과를 대신해야겠다. 천하장사나 맥스봉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동네는 길고양이가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이면 주택가로 몰래 들어와 조용한 식사를 하는 고양이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색하지는 않지만 서로 놀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낮에 집 밖을 나와 걷다 보면 적어도 2,3마리 많을 때는 5,6마리의 고양이를 볼 수 있다. 녀석들은 대체로 오동통한 편이다. 주기적으로 자기 집 앞에다 물과 먹이를 주는 사람도 있고 주민들이 고양이를 크게 싫어하지 않는 편이라 손에 들려있는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들 역시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지는 않는다. 손짓을 하면 쪼르르 다가와 애교를 피우는 녀석도 있고 자주 마주치다 보니 얼굴이 익숙해진 건지 옆으로 지나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녀석들도 제법 있다. 
  
 햇살 좋은 봄날이면 길에 편하게 누워 일광욕을 하는 배짱 좋은 고양이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쫓아내려는 사람도 없고 싫어하는 사람도 없으니 고양이들에게 우리 동네는 꽤 살기 좋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오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벤치 옆에 다소곳하게 앉은 턱시도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작고 아담한 몸집에 애교도 많아서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예뻐하는 고양이다. 먹을 걸 좀 달라는 건가 싶어서 나는 먹을 게 없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를 빤히 보며 몇 번 야옹야옹거리더니 턱시도 고양이는 풀숲을 가로질러 가버렸다. 나름 자주 보는 얼굴이라 내게 인사를 건넨 건지도 모르겠다. 
  
 주기적으로 먹이를 챙겨주지는 않지만 나는 길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름을 붙여줘 가면서까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다세대주택과 신축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 많이 사는 이 오래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그저 정겹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머지않아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조금 안타깝다. 동네의 재개발이 결정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여기저기에 내걸렸다. 이제 변화는 주민들의 바람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몇 년 후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될 것이고 동네의 풍경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이 많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끝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의 낡고 오래된 풍경이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진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동네 고양이들의 생활도 머지않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들어오면 익숙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낡은 연립주택들 대신 높게 솟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서 있는 풍경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다만 그때가 오면 자주 만나던 익숙한 얼굴들을 보지 못하게 될 거란 사실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진다. 변화는 언제나 갑작스럽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언제나 현실보다 느리다. 결국 익숙했던 것들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도시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또 넓어지고 있다. 화려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세련된 최신식 아파트와 빌딩이 늘어선 모습을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불편한 것들은 편리함에 의해 대체되고 오래된 것들은 자본에 의해 밀려나간다.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정갈하지만 조금은 단조로운 풍경이 자리 잡는다. 변화는 결국 과거와 맞바꿔 얻는 것이다. 잃은 것을 헤아리기보다 얻는 것을 세는 것이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변화는 곧 혁신이다. 혁신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곧 사라질 것들을 향해 정겨운 손길과 눈길로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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