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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28. 2017

감기

감기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12월의 겨울 하늘은 종종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민낯을 드러낸다. 따뜻한 실내에서 창밖을 보고 있을 때면 가을이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예쁜 하늘과는 별개로 날씨는 제법 변덕스러웠던 탓에 올12월은 유난히 겨울비가 많이 내렸다. 차가운 비가 내리다 가도 이튿날이면 영하 10도 가까이 기온이 떨어져 버리는 적응하기 어려운 날씨. 종잡을 수 없는 겨울날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기를 달고 산다. 두꺼운 코트와 머플러로 중무장을 하고 찬바람을 피해 다녀도 갑자기 달려드는 감기에는 속수무책이다. 여간해서는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나도 이번 겨울에는 꼼짝없이 하루를 끙끙 앓았다. 
  
 아침운동을 다녀와서 그림을 그릴 때부터 코가 막히더니 늦은 오후에는 머리가 살살 아파오는 게 감기다 싶었다. 집에 있는 드링크제 감기약을 먹고 두꺼운 이불을 덮은 후 가만히 누워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열도 내리고 코 막힘도 가셨지만 머릿속은 두통으로 인한 무거운 불쾌감이 여전히 가득했다. 창문을 열어 답답해진 공기를 환기시키고 거실로 나와 생강차를 한 잔 끓여 마셨다. 생각지도 못한 감기에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두꺼운 옷도 챙겨 입고 요 며칠 간 무리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감기몸살이라니 괜스레 억울해져 짜증이 났다. 머리가 띵하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나 다름없다. 감기약을 미리 먹을 수도 없고 따뜻하게 입고 다닌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1년 내내 운동을 거의 빼먹지 않는 데다 손도 자주 씻고 비타민도 꼬박꼬박 잘 챙겨먹는데 왜 감기에 걸렸나 싶었다. 체력관리를 꾸준히 해온 터라 갑작스런 감기 때문에 나는 자존심이 꽤나 상해버렸다. 걸릴 만한 이유가 정말 단 하나도 없다고 짜증스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던 그 때, 한 문장이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건 내 생각일 뿐이지.’ 감기에 걸리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없다. 애초에 질병은 원천봉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짜증이 섞이다보니 나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진짜인 것 마냥 품고 있었다. 원래 감기는 예고도 이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건데 말이다. 
  
 그 순간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싶었다. 하루면 나을 시시한 감기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는 내가 조금 우스웠다. 당연하게 하던 행동들에 뒤늦게 당위성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불평하다니. 운동은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 하던 것이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손은 자주 씻을 수밖에 없다. 비타민은 건강을 생각해서 챙겨 먹던 거지 감기를 예방하려고 먹은 것도 아니었다. 예방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니므로 감기에 걸렸더라도 딱히 억울할 건 없었다. 불평은 사람을 유치하게 만든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음에도 내가 늘어놓은 불만 섞인 푸념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불평을 입 밖으로 꺼내 다른 사람 앞에서 쉼 없이 뱉어낸다면 상대방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푸념과 불만이 어우러진 불평은 이유 있는 고민이나 공감을 근거로 한 비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는 건설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공감하고 함께 생각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불평은 오로지 혼자만의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의 결과물이다. 나만의 언어로 어지럽게 그려진 도식을 상대방은 쉽게 읽어낼 수 없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 대화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불평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혼자만의 생각을 자기만의 언어로 쏟아내는 사람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과의 대화는 깊이감이 없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르다 결국 시간만 낭비하게 만든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나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손해와 피해를 입는 일도 자주 있다. 그럴 때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짜증과 화가 치밀 수밖에 없다. 다만 같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누군가는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어차피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하고 해결하는 일은 본인의 몫이다. 짜증 섞인 불평을 쏟아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부정적인 사고와 행동은 반복하다보면 결국 습관이 된다.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는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짜증과 불만을 쉼 없이 늘어놓는 사람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은 과연 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신뢰는 행동을 통해 강화되고 행동은 그 사람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언어는 습관이다. 자주 하는 말에 담긴 분위기가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든다. 무심코 뱉은 불평과 불만 속에 담긴 부정적인 분위기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이 나를 만든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쏟아냈던 말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긍정적인 삶을 살려면 긍정적으로 말해야한다. 자주 사용하고 흔하게 쓰는 말의 이미지를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 작은 변화와 노력이 누적되다보면 삶은 변화한다. 한마디를 바꾸면 사람의 분위기가 바뀐다. 분위기가 바뀌면 사람이 달라진다. 사람이 달라지면 삶은 그때부터 역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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