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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Sep 27. 2024

[책리뷰, 책요약]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I may be wrong. 책리뷰, 책요약,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생각정리


더 높은 지혜에 도달하고 싶다면, 신념과 확신을 살짝 내려놓고 우리가 실은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는 점을 알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좀체 없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매달리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 내면을 확장하고, 다른 방법을 고안하고,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 발췌>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 나티코는 이미 2020년 루게릭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티코가 죽기 전까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은 작가가 쓴 유일한 한 권의 책입니다.


소제목이 '숲 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입니다. 나타코는 20대에 금융회사에 CEO를 맡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과감히 그 자리를 그만둡니다. 그리고 태국의 스님이 됩니다.


17년간의 스님 생활을 한 후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옵니다. 돌아와 적응하는 과정과 시간도 고통이였습니다.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평정심과 자유로운 평온을 찾는 방법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흔들림을 울림 있게 전달해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결국 작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세상을 떠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목을 보고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수없이 존재합니다. '문과남자의 과학공부_유시민저' 책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는 것보다 수 없이 많습니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세상도 수없이 존재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무지합니다. 무지하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틀릴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woodyk/979



우리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부족하기에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하는 행위가 아닌 겸손하게 자연스럽게 자신을 다듬고 지속적으로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부족하고 비어있는 여백에 진짜와 본질의 세상들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타코가 회사에서 일할 때의 답답함이 태국의 스님이 되었다고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스님이 되는 과정도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고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고민들도 존재했습니다. 스님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세속의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버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절제와 수행,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실천하며 자신을 비워가는 과정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젊은 시절의 성공스토리도 다 벗어던지고 스님이 되고자 하는 결심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다시 17년의 수행을 끝내고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도 그에 못지않은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현실세계와 멀어진 시간이 길다 보니 그 세상을 벗어나 다시 또 다른 세상으로 발을 딛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넘어지고 아파합니다.


두렵고 힘들어 합니다. 수많은 수행을 했음에도 너무 아파합니다. 새로운 환경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난이 생기지만 그것들을 극복하고 자신이 잘하는 '마음의 평온을 찾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과정'을 이 세상에 전파하며 세상으로 나옵니다.


사람은 늘 마음이 흔들립니다. 매일매일 가슴속에 일렁이는 파도가 존재합니다. 파도가 치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이 파도가 자신을 몰아칠 때 평정심을 잃습니다. 평정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여정에 자유로움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찾아주고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의 노력과 스스로의 비우는 과정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과 삶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과 대화합니다. 그런 삶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비움을 만들고 이 세상과 이별합니다.


읽다가 책에 줄을 치며 제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성찰하고 흔들리는 마음에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누구나 인간의 삶에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잘 잘알 것입니다. 이승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저도 모르게 꾹 쥐어던 주먹이 스르르 풀리고, 펼친 손은 삶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 발췌>


# 읽기를 권장하는 분: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은 분, 일상이 무료하고 답답한 분, 회사생활이 힘드신 분, 우울증이 있으신 분,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으신 분, 유식한 척 잘난 척 잘하시는 분, 겸손하지 못하신 분

# 개인적 평점: 5점 만점 중 4.5점

# 한 줄 요약: 인간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존재이기에 늘 스스로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비우며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혼돈스러움에서 자유로운 마음을 지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_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도 지음>

적어도 슬픔이나 불안감이나 외로움이 밀려들 때 호흡에 집중하면 좋다는 사실은 체득했습니다. 제 의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아무 의심 없이 믿지는 않게 되었지요. 그것이 부처님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부처님이 왜 인생의 무상함을 그토록 강조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힘든 시절조차 영원히 지속되진 않지요. 그것이 부처님이 준 두 번째 선물입니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관심을 거둬들이고 선택한 곳으로 주의를 쏠리게 하는 것. 진정한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거뿐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준 세 번째 선물입니다. "떠오로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살면서 이보다 더 도움이 됐던 말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때 우리는 자기 내면에 참된 친구이자 소중한 동반자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며 절대적으로 여러분의 편이지요.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못하고 다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가 되어 수시로 상처받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세상과 제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현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예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성적인 마음은 하인이다. 반면에 직관적인 마음은 신성한 선물이다. 우리가 창조한 사회는 하인을 섬기느라 선물을 잊어버렸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지혜'라는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의 소리는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세상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변화의 방향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대체로 무관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누군가가 우리 생각대로 바뀌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는 겁니다.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저는 여러분이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 상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니까요.


생각과 통제력을 내려놓기, 내면을 돌아보고 경청하기, 현재에 집중하기, 정기적으로 편안하게 쉬기, 신뢰하며 살기.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의 현실에 더 깊이 뿌리내린 소중한 것들을 탐지하는 일이지요.

삶을 뜻대로 휘두르려고 노력하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변화는 자연의 속성입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우리 마음속의 아름다운 안식처들을 어떻게 기르고 넓힐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아주 간결하고 분명하게 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너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느니라"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만세! 영원히 지속되는 폭풍우는 없지요. 그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가 진정 우리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면 아름다운 일이 일어납니다. 내 어깨 위에 얹힌 무게가 줄어들게 되지요.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기억은 우리가 앉아 있는 목욕물과도 같습니다. 그 깨끗함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그리고 내일은 그보다 더 많이.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가 그 점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그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상대를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을 때, 지금 누리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라질 것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르는 데 필요한 건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변화입니다.

저를 점점 줄이고 삶을 위한 공간을 더 넓히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은 더 현명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엔 삶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 저는 단지 그 순간을 그대로 알아차리려 할 뿐입니다. 괴롭고 부정적인 감정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최대한 내려놓습니다. 대신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 애씁니다.


삶을 통제하려 애쓰는 대신 삶과 함께 춤출 수 있음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기보단 손을 활짝 펴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또는 어떻게 될지를 곱씹는 대신 매 순간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사는 것 또한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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