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설레임을 찾는 시간, 삶의 균형을 찾는 새벽의 가르침, 새벽명상
과거를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죽은 기억들로 가득 찬 관을 메고 다니지 마십시오. 만약 그렇다면 실제론 본인에게 속하지 않는 무거운 짐으로 자신을 짓누르는 것입니다. 과거를 놓아버리면, 여러분은 현재 순간 속에서 자유로울 것입니다.
<아잔 브람, 놓아버리기 중>
시간이 흐를수록 설레임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에서 조금씩 사라집니다. 듣고 보고 경험이 쌓일수록 무언가를 기대하며 가슴 뛰는 순간들이 흔치 않아집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친구들을 만나는 설렘, 개봉 영화를 보러 가는 기대,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의 두근거림 등 소소한 일상 속에도 충만한 설렘이 존재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들은 익숙해지고, 수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루함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이 일상이 되었을 때, 설렘보다는 평온함이, 때로는 지루함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시 설렘을 되찾으려 애쓰게 됩니다.
이런 일상 속에서도 새벽의 시간은 고요하지만 은은한 설렘을 줍니다. 혼자 앉아 있는 거실에서 어둠이 깔린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며, 온몸으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느낌이 듭니다. 기지개를 펴고 안의 따뜻함을 밖의 차가운 공기로 환기할 때, 온몸의 세포들이 함께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 적막함 속의 맑은 정신. 그리고 글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설렘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줄 한 줄 글을 써 내려가며 스스로의 심리 상태를 정리하고, 새벽이 주는 혼자라는 혜택을 오롯이 누리게 됩니다. 낮 시간 동안 온몸으로 들어왔던 독소를 디톡스하고, 차분함에서 비롯된 내면의 소리를 적어 봅니다.
사람에게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침은 문제를 낳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균형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균형을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뿐, 완벽한 균형은 만들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낮 시간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지친 심신을 밤 시간 잠으로 회복합니다. 수면은 지쳐 있는 우리 몸을 다시 균형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그리고 새벽이 오면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정비하며, 불균형 상태를 균형 상태로 조금씩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낮이라는 시간의 번잡함과 다양함이 존재하기에 밤 시간의 수면이 더 큰 의미를 가지며, 새벽 시간의 조용함과 적막함이 심신에 설렘을 준다는 점입니다. 낮과 밤, 그리고 새벽의 균형이 존재할 때 우리는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완벽한 균형은 존재할 수 없으나, 균형을 찾아가려는 활동들이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에너지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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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적막함만 존재할 수도 없고, 늘 시끄러움만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시끄러움과 적막함이 서로를 감싸줄 때 우리의 삶은 균형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균형으로 다가가려 할 때 우리의 삶은 행복해집니다.
낮의 번잡함은 어느 때는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낮의 시끄러움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어느 때는 흥미롭기도 합니다. 지치는 시간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적막한 새벽 시간은 그런 치열함이 존재했던 낮과 대비되며 혼자라는 시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스스로를 다듬고 정돈하며 생각들을 정갈하게 조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저 멀리 움직이는 태양과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와 호흡하며 자신의 심신을 가다듬습니다. 설렘은 사람들과 무언가를 하면서 받아들이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시간에 존재하는 자연과 호흡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벽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부족한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지쳐 있는 자신을 다독이며, 설렘이 없던 감정을 다시 설레게 하고 시끄러웠던 시간들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눈물이 눈 속의 먼지를 씻어내듯 새벽은 눈물처럼 흩트러진 자신을 정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균형을 찾아가려는 시간이 새벽입니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새벽입니다. 동이 트기 전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 붉은 색감이 물들 때, 새벽에 깨어 있는 기쁨이 오롯이 온몸으로 전달됩니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살아 있음에 지금의 시간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작은 휴대폰 속으로 빼앗기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새벽만큼은 나라는 존재를 나에게만 온전히 허락하는 시간이 되어 줍니다.
완벽한 균형이 되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균형은 이 세상에서의 활동이 멈추고 우리가 태어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균형하지만 균형으로 다가가는 시간 동안 행복해지고, 그것이 완벽한 균형이 되었을 때 유에서 무로,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자연 속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새벽은 설렘임입니다. 새벽은 균형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새벽의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곧 살아 있음의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