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명상으로 나를 찾는 시간

플로팅 명상, 빠른 세상 속에서 느린 호흡의 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by WOODYK
고요하게 산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거나 관계를 맺지 않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고요의 힘, 탁닛한 저>



속도가 주는 압박의 시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다. AI의 영향으로 세상의 틀이 순식간에 재편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박탈감을 안겨준다. 두려움 때문에 아예 변화를 외면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역사 속 변곡점마다 사회에는 불안과 혼돈이 존재했다. 하지만 과거의 변화는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 지금은 다르다. 준비할 틈도 없이 흐름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사람들을 짓누른다.


기업들은 무한 경쟁을 통해 AI의 확장성을 넓히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듯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 생태계가 펼쳐진다.


IT 기업 워크숍에서는 AI를 빼면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다. 모든 것이 AI로 귀결되고, 사람과 조직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기업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이런 미친 속도 속에 인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감성을 지닌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화의 물결을 온전히 이해하며 쫓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AI 세상에 들어와 있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전자제품이 AI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그 속에 스며들어 살아가며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새벽의 고요함이 주는 에너지를 좋아하고, 신선한 아침 공기와 새소리에 마음이 설렌다.


푸른 숲과 울창한 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천천히 걸으며 자연의 내음을 맡으면 마음이 침착해진다. 이것은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스마트폰의 문자와 SNS에 눈이 피로하고, AI가 주는 속도감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하루의 무게에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과 고요함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다시 맑아진다.


일상 속의 명상


정신에 피로가 쌓이고 혼미할 때 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 보면 걷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이 명상이 된다. 그 시간 동안 답답했던 뇌의 노폐물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책을 읽을 때는 집중을 통해 잡생각을 지우고, 그것에서 오는 조용함과 적막감을 즐긴다. 운동할 때는 근육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순간에 집중하고 피로를 덜어낸다.


이 모든 활동이 명상이다.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명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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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팅 명상의 경험


우연히 플로팅 명상을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물 위의 매트에 누워 싱잉볼의 울림에 맞춰 명상하는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느낌도 색다르지만, 싱잉볼이 주는 울림은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플로팅 명상이 시작되었다. 적막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머릿속 번뇌를 잊고 싱잉볼의 울림에 나를 맡긴다.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나를 잊는다.


명상은 그 시간을 비우는 과정이다. 집중하며 버릴 수도 있고, 무생각으로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플로팅 명상은 무생각으로 싱잉볼의 소리에 나를 흘려보내는 느낌이었다.


명상은 어디에서나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하는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가고 그 시간,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머리가 맑아지고 혼돈되었던 생각들이 정리된다. 버려야 할 것들이 버려지고, 지켜야 할 나의 마음이 강해진다. 일상 속 여러 잡동사니가 작아지고, 나의 울림이 커지는 시간이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하여


'자아'라는 존재가 있기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의 속도와 변화 속에서 자아는 사라지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로 변해간다.


어디론가 사라진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다른 모든 것들이 나를 지배한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다. 감정적인 존재가 기계적 존재처럼 변해가는 시대에 우리는 나를 잃어갈 수 있다. 그렇기에 적막함과 고요함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속도에 압도되더라도 고요함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조용함 속에서 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나라는 존재는 작은 우주다. 작은 우주가 살아가는 것은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서 있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속도와 변화가 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지만, '나'라는 존재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생명체다.


우리 자아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자기만의 조용한 나침반이 있어요. 그러나 그 지혜는 요란스러운 자아와 달리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아가 던지는 질문과 요구는 그보다 몇 배나 시끄러워 지혜의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요란한 소리에 쏠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립니다. 갈등에 끌리고, 불안과 불행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항시 현실과 투쟁하게 되지요.<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저 >



나의 페이스로 걷기


명상은 잠시 동안 나에게 집중하고, 쓸모없는 생각을 지우며, 감정을 가진 인간이 다시 자신의 호흡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우리는 세상의 속도를 느끼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걸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속도에 빠져 흘러가는 모습이 누구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속도는 상대적이기에 나를 잃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자신의 호흡과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어느 때는 천천히 어느 때는 빠르게, 꾸준히 걸어가길 바란다.

명상은 우리의 일상이다. 명상은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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