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쓰기의 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들
남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은 불행한 인생이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살다 보면 인생 전체가 거짓말이 이 된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저>
딱딱해진 뇌는 잠을 통해 유연해집니다. 뇌의 노폐물이 자는 동안 청소되고, 뇌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활성화됩니다. 그렇게 새벽에 눈을 뜹니다.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새벽에 일어나게 됩니다.
새벽 시간을 즐깁니다. 물론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든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누워 조금 더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겨울이라는 추운 기운이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맞습니다. 활동량도 줄고 이불속에 몸을 담고 누워있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그럼에도 새벽은 나를 기다립니다.
새벽 향기를 좋아하기에 일어나 창문을 엽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다가오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밖은 아직도 어둠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몇몇 등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냅니다. 밖은 조용합니다. 오직 혼자만의 생각들이 뇌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글을 쓰고 싶어 집니다. 글을 읽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가만히 밖을 보며 그냥 이 적막을 즐기고 싶어 집니다.
하루하루의 새벽이 지나가지만, 하루하루의 새벽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늘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가 오롯이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합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거실에서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살아가는 시간 속에 새벽이란 시간이 주는 소중함을 늘 느끼고 삽니다.
새벽이란 시간의 존재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낮의 시간을 톤다운시켜 줍니다. 수많은 말들과 행동들이 낮의 시간 동안 채워지지만, 새벽은 어두운 적막 속에서 말도 없이 자신을 비워가며 새벽의 적막함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외로움이란 혼자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기에 더욱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이 산속 오두막에 홀로 지내며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 속 모든 생명들을 보며 그들의 존재를 이해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새벽의 어둠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어둠 속에는 나 아닌 존재들도 함께 숨 쉬고 적막함을 느끼며 곁에 존재합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단지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새벽이란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은 그렇게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더욱 깊은 곳으로 안 보이게 만들어 주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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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깊게 안 보여준다는 것.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쓸모없이 보이길 바랍니다. 수많은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시각을 흐리게 합니다. 보이는 모습을 꾸미고 잘 보이고 싶은 욕망들이 우리 주변을 에워쌉니다.
새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욕망은 사라지고 새벽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누구를 위한 시간도 아닙니다. 자신을 위한 시간들입니다. 깊게, 더 깊게 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새벽이 주는 어두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내력을 쌓아줍니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읽고 쓰는 사이에 생각이 존재합니다. 생각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됩니다.
주변의 혼돈스러운 것들에서 벗어나 홀로 지금 여기, 이 시간을 즐기고 있게 됩니다. 멀리 여행을 가지 않아도 지금 이 새벽의 순간들이 여행의 시간이 되어 줍니다. 낯선 환경에서의 새로운 생각들의 탄생이 아니라, 익숙한 곳의 환경 속에서 새벽이란 여행을 떠나 새로운 생각들을 탄생시켜 줍니다.
버려지고 찢기고 지쳐있는 자신을 새벽은 안아주고 치유해 줍니다. 지쳐 쓰러진 침대 속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자신의 뇌를 정비하게 합니다.
밖을 봅니다. 어둠 속의 적막이 너무 평화롭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정신을 차립니다. 고요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그리고 어둠이 주는 적막함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린 시절의 새벽이 움츠림의 시간이었다면, 나이가 들어감의 새벽은 정신과 육체가 유연함과 맑음을 되찾는 시간입니다. 어린 시절의 새벽이 버거운 시간이었다면, 나이 들어가면서 맞이하는 새벽은 자신을 만나는 철학의 시간입니다.
고요함이 주는 이 새벽의 아름다움이 기분을 상쾌하게 합니다. 새벽의 작은 활동들이 피곤함을 잊게 합니다. 쓰고 읽고 생각하며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깊은 폐로 들어오며 새로운 기운들이 신체를 채워줍니다. 지쳐 들어왔던 어제의 밤이 다시 충전된 새벽을 맞이하게 합니다.
새벽은 그렇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보여주고, 적막하지만 나를 적막하게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정신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육체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단단해집니다. 새벽의 시간은 버릴 순간들이 없습니다. 새벽을 오롯이 느끼고 온몸에 감싸 안습니다.
새벽의 적막이 이미 명상의 시간으로 이끌어 줍니다. 명상은 새벽이라는 자체만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쓰고 읽고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나에게 깊게 빠지는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의 가치를 느낍니다. 새벽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다른 존재하는 것들이 보입니다.
새벽은 그렇게 자신을 성장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