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법, 책을 읽어도 왜 모를까
글의 깊은 뜻은 대개 글줄이 아니라 글줄과 글줄 사이, 행간에 있기 마련이다. 글줄이 전하는 정보에만 갇힌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헛똑똑이라고 한다.
눈과 귀와 같은 감각기관은 생각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보고 듣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외부의 사물이나 그 사물로 인해 생기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이끌려가게 되고 하찮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을 맹자는 '생각을 하면 얻지만 생각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로 표현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조윤제 저>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내가 그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책 속의 메시지를 포착하여 자신의 삶에 그 의미를 녹이는 것이고, 유튜브 시청도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해주지만, 그 내용들이 진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읽고 본 내용들을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 안의 어둠과 마주하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활자를 눈으로 훑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있습니다. 읽는 동안 인내하고 집중하며, 잠시라도 일상을 벗어나 멈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시청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내용을 보면서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몰랐던 내용을 인지하게 해 주며, 스트레스 속에 있던 뇌를 잠시 쉬며 무디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 전달하는 내용들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몇 백 페이지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속의 내용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써보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글과 말로 표현해 보고, 그것을 생활 속에 실천해 봐야 진짜 아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가 멋진 말들로 책을 썼어도, 그것이 자신의 의미로 다가오려면 그것에 대한 깊은 생각과 일상의 실천이 녹아들어야 진짜 아는 것이 됩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과장이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해봐야 아는 거지"라고 말한 것처럼, 지식은 머릿속에 머물 때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될 때 비로소 진짜 '앎'이 됩니다.
우리는 유튜브 속의 내용을 보고는 자신의 지식인 양 자랑도 하고, 본 내용을 잘 안다고 착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잘 아는 게 아니라 본 것이고, 그 내용이 자신의 뇌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없으면 그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본 것이 됩니다.
문제는 읽고 본 행동 자체가 안다는 것처럼 뇌에 신호를 보낸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쉽게 접했을 때 마치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 것처럼 느끼는 현상입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과 면담을 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했던 일들, 그리고 그 의미를 물어도 체계적이고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본 것들이 스쳐 지나가도 그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아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것이 아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본 장면만이 진실이 되고, 보이는 것이 자신이 아는 것이라는 착각. 그 착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https://brunch.co.kr/@woodyk/1014
회사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다 해봤어. 그거 내가 다 알아"라는 말을 사람들은 자주 합니다. 진짜 다 안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더 강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위험합니다. 다 아는 게 아니라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찌 직접 다 해보지 않고 속속들이 각 부서의 일들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타 부서의 고민들을 다 알 수가 있을까요? 절대 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한 것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성공한 0.1%의 사람이 유튜브나 책을 통해 성공 이야기를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던집니다. "뻔히 아는 이야기네. 그거 나도 다 알아." 그리고 실천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뿐입니다. 진짜 다 아는 것일까요?
아무리 누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도, 책 속에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아도, 그것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는 척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요한 것은 흩어진 지식과 지혜들을 자신의 논리로 체계화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전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귀찮고 힘든 과정입니다. 뇌의 에너지를 많이 빼앗아 먹습니다. 그냥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게 되면 생각할 필요가 없듯, 뇌는 생각의 과정을 귀찮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과정이 존재할 때 한 단계 자신을 알아가게 됩니다. 생각의 과정이 진행되며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쓸 때, 또는 그것들을 실천으로 옮길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삶의 태도가 겸손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는 척하면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갈 수 없습니다. 아는 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겸손할 때, 다른 지식들과 지혜들이 흡수될 수 있습니다.
아는 척은 쉽습니다. 그냥 읽고 본 내용의 일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던지면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잘 안다고 자랑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순간 지식인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토론회를 보다 보면 장황하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입니다. 그리고 사실과는 전혀 관련 없이 자신의 진영 논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면 토론이 안 되고 발전적으로 진전하지 못하며, 그냥 배설의 시간이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토론자가 정말로 알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이 토론회에 나온 지식인으로 아는 척하려고 나온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상대의 의견과 다를 수 있고 논쟁이 붙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주장만이 맞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진짜 토론자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와 행동 자체도 '안다'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한 분야에 많은 시간을 투여한 사람일수록 외골수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 분야가 이 세상의 전부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의견과 다른 생각들이 그 벽을 넘보지 못하도록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세상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아주 아주 극소수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안다고 말만 하지, 실천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부족하기에, 아는 게 많지 않기에, 행동과 태도로 실천하지 않기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을 자랑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늘 자신의 판단과 생각들이 '안다'는 착각 속에서 진행되는 오만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주변의 피드백도 받아보고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진짜 알고 있는 것인가?" 모르면 물어보고,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들어봐야 합니다.
조직을 운영하며 스스로 귀를 막아버릴 때 직원들은 문을 닫아버립니다. 문이 닫히며 리더는 아는 척하는 바보가 됩니다.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는 척할 때가 아니라, 그것들을 귀 담아 듣고 실천하고 행동할 때입니다.
리더가 실천하는 등을 보고 직원들은 움직입니다. 그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할 때 문은 열리게 됩니다.
소통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알아가려는 노력은 힘든 시간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려고 할 때 문은 열려 있게 됩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솔직함이 때로는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르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습니다. 많이 안다는 게 많이 아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것, 아는 척하는 게 아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본 게 전부가 아니고 보았다고 아는 게 아니라는 것. 그 속에 '겸손'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듣고 보고, 그리고 실천할 때 우리의 뇌는 알게 됩니다.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언어로서 생각이 정리되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말하고 쓸 수 있게 됩니다. 생각의 과정, 실천의 과정, 이런 과정들이 진행되며 우리는 아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곱씹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지금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생각과 실천의 과정 없이 오만함 속에 살아가지는 않고 있는지요?
진짜 안다는 것은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배울 수 있는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배움을 생각으로 소화하고 실천으로 체득할 때, 우리는 조금씩 진짜 '아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과정 위에 서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 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