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부모님의 우산이 넓기만 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유산, 그 속에 삶이 전부 있다.

by WOODYK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경>



주변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그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부모님입니다.


살아계실 때 어린 나를 키워주시고 지켜주신 감사함도 있지만, 돌아가신 지금도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큰 위기가 닥쳤다가 극복되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부모님이 어딘가에서 지켜보시며 나를 보호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부모님의 보호막이 아직도 나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면,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했던 시간들이 새삼 아쉽고 무겁게 다가옵니다.


부모님이 지금도 나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신을 믿듯이, 나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이 하나의 믿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운 좋게 해결되고 나면, 이 세상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에너지 안에 부모님의 따뜻한 기운이 함께 머물고 있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런 에너지가 실재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의 안정과 위안만큼은 부모님께 기대고 싶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의 은혜는 이미 시작되었고, 살아가는 내내 부모님의 그늘은 나를 조용히 보호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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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도, 젊었을 때도, 부모님은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시는 뵙지 못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빠가 내 곁을 떠나기 전날에야 '아빠 미안해, 미안해'. 다급한 사과들을 쏟아 냈다. 그때 아빠가 그랬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빠는 천국에 살았노라고 <폭삭 속았어요 드라마 속 명대사>


바쁘다는 핑계로, 내 시간이 소중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소홀했던 날들이 지금은 그저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떠난 자리가 비로소 그 사랑의 크기를 더 크게 실감 나게 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뜻하지 않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일들이 가까스로 해결되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순간순간이 모두 위기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들에 조금만 더 큰 화가 더해졌더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졌을 거라는 두려움이 뒤늦게 밀려옵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기운이 나를 돌봐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큰 위기를 지나고 나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순간들의 두려움과 당혹감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밤을 지새우게 합니다.


눈을 감으면 위기의 장면들이 몇 번이고 다시 펼쳐지고, 그것을 되감다가 문득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아슬아슬했던 순간들 곁에, 꼭 부모님이 계셨던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은 평생 힘들게 사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괜찮으시냐고, 힘드시지 않으시냐고. 이제 와 그 말 한마디가 이토록 마음에 걸립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속에서도 주변 분들에게 조용히 덕을 쌓아가셨습니다. 집에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반드시 대접을 하셨고, 도움이 필요한 동네 분들에게는 직접 달려가 일꾼이 되어주셨습니다.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목을 축이러 들른 낯선 손님에게도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넬 줄 아는 따뜻한 정이 그 집에는 있었습니다.


양심을 버리지 않으시고, 성실하고 착하게 사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함께 안타까워하시며 손을 내미셨습니다.


살림이 부족해도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히 꺼리셨고, 힘든 시간을 묵묵히 인내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가셨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정겹게 어울리며 사셨던, 그런 분들이셨습니다.


살아오시며 차곡차곡 쌓아오신 덕들이 자식에게도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의 우산이 탄탄하게 펼쳐져 있어, 웬만한 비바람은 막아주셨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님의 기운은 여전히 자식들 곁을 조용히 지켜주고 계신 듯합니다.


법정 스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베풀고 나눈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 어딘가에 남아 다시 돌아온다. <법정 스님, 무소유 중>


부모님이 평생 베푸신 것들이 이제는 자식들을 위한 보호막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감히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살아가는 동안 예상치 못한 위기들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 일들이 주변의 도움으로, 혹은 알 수 없는 기운으로 해결될 때마다 부모님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덕을 쌓아오신 그 긴 시간들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겸손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삶은, 저로 하여금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가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 앞에서 낮아질 줄 아는 태도. 그 겸손의 철학을 부모님은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있었기에 오히려 겸손할 수 있었고, 부족함이 있었기에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고단하고 힘드셨을 나날들이, 자식에게는 가장 깊은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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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부모님은 그 알을 대신 깨 주신 분들이었습니다. 당신들의 고단함으로 자식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흐름은 언제나 변수로 찾아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면 대비할 수 있지만, 삶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납니다. 세상을 다 안다는 착각과 오만이 불러오는 불행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겸손해야 하고, 배움 앞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부모님이 온몸으로 보여주셨던 그 삶의 방식이 이제는 저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자꾸 생각납니다. 세월이 흘러도 부모님의 우산은 여전히 크게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어간다고 해서 부모님의 모습이 기억에서 흐려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두렵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부모님이 보고 싶어 집니다.


살아계실 때의 미소가 떠오르고, 오랜 세월이 새겨진 손의 주름이 내 손에 느껴지는 듯합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새삼 그립습니다.


저를 이 자리까지 키워주시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고, 삶의 철학을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쳐 주신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지는 모르지만, 오늘 아침은 유난히 부모님이 그리운 날입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