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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Sep 23. 2024

산사 가는 길 어머니의 뒷모습

어머니를 만나다.

주다. 받다. 이 당연한 거래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 받지 않고 주는 사람. 그래서 손해가 막심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러나 이는 착시. 길게 보면 그녀 역시 받는 만큼 준다.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사람사전_카피라이터 정철>


산사를 가는 길에  지나가시는 연세 드신 어머니를 보게 됩니다. 허리가 굽고 얼굴에 세월이 담긴 주름살이 보입니다. 손에는 밭에서 키운 채소가 담긴 바구니를 안고 계십니다. 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듯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정도 되시는 분을 보게 되면 문뜩 저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보고 싶습니다. 전화를 드리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살아계실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돌아가신 후에는 갑자기 울컥하며 찾아옵니다.


살아계실 때는 어머니 목소리가 그리워 자주 전화드렸지만 말하다 보면 짜증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받아주고 포용하셨지 아들의 짜증에 화낸 적이 거의 없으십니다. 젊었을 때의 에너지가 소진되시고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연약한 몸이 되셨을 때조차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주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걷다가 힘이 드셔서 잠시 길에 주저앉아 계시기도 하고 밖에 나가실 때는 최대한 단정한 모습으로 나가시려고 옷을 단정히 입으셨습니다. 동네 시장에 나가 장을 보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힘든 몸이지만 늘 장에 나가 시장 분들과 이야기하고 흥정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를 좋아하셨고 어디를 가나 매너를 지키시며 사람들에게 따듯하게 정을 나누셨습니다.


지나가시는 시골 마을의 어머니들을 뵐 때면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주름진 손에 늘 짐을 들고 계시고 가만히 있지 않으시고 자신의 뼈가 닳고 아파도 일을 하고 계신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의 깊고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늘 어머니 곁을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며 어머니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던 후회가 되살아 납니다. 왜 그때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드렸어야 하는데 하며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그런 후회는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그런 후회를 하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단다. 살아 있을 때 얼굴 한번 더 보고 목소리 한 번 더 듣는 게 중요해. 죽고 난 후 제사도 필요 없단다."


알면서도 현실에 집착하며 어머니의 고마움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찾아뵙고 따뜻한 말을 전달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후회는 아무 의미 없는 메아리일 뿐입니다.


지나가는 시골 어머님들을 만날 때마다 흑백사진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머니의 모습은 늘 칼라사진보다는 흑백사진처럼 느껴집니다. 칼라사진의 갖추어진 이성보다는 흑백사진의 부족한 감성이 더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부족한 과거의 삶이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흑백사진으로 그려주는 듯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기억들은 잊힙니다. 기억은 사라지고 감성만이 남습니다. 기억은 저장하지 않으면 사라지지만 그때의 느낌과 감성은 우리의 세포를 살아나도록 합니다. 어머니가 품었던 온기는 아직도 세포에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가 주고 가신 정신은 아직도 세포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기억이 남긴 것보다는 우리의 느낌과 감성이 아직도 세포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시골 어머님들의 주름진 손과 얼굴에서 보입니다. 그분들의 주름진 손을 꼭 잡고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작은 아이였던 친구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갑니다. 보살펴 주시고 아껴 주셨던 시간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에 늘 감사합니다. 일상 속에 어머니의 존재감이 컸지만 그 존재감의 고마움을 많이 자주 전달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죄송함보다 저는 고마움을 더 간직하려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위대함을 존경하려 합니다. 아픔이 있어도 자식을 위해 숨기고 힘듦이 자신을 지치게 해도 자식을 위해 버티셨습니다. 자식의 부족함을 용서와 포용으로 감싸안으셨기에 아직도 제 마음속에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의미 있는 시간들이 하루하루 지나가지만 그 속에 늘 지켜봐 주셨던 어머니가 있어 힘이 납니다. 산사에 가는 길에서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일을 하시고 주름 진 손에 짐을 들고 가시며 미소 짓고 있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봤습니다.


곳곳에 어머니의 흔적을 남겨 주셔서 저의 마음속에는 따듯함이 살아 움직입니다. 어머니가 주신 느낌과 감성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의 곁에 나타나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김윤도>

새벽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의 굽어진 등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긴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 하나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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