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고 비울 줄 아는 것이 어른이다. 당신은 내려오고 비울 줄 아는가!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셰익스피어
들고양이 한 마리가 높은 소나무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너무 멀리 올라가 내려오질 못합니다. 올라갈 때는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만, 내려올 때는 너무 무서워 지상으로 발을 내딛지 못합니다. 결국 신고를 받은 119가 출동해 고양이를 구출해 줍니다.
이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인도, 권력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고 싶어 합니다. 욕심이 욕심을 부르고, 그 크기는 멈출 줄 모르고 커져만 갑니다. 자신이 내려와야 할 시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계속, 위로만 올라가고 싶을 뿐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보고 생각의 폭이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꼭대기만 보이고, 꼭대기만 향합니다.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물불 가리지 않고 올라가는 방법만 찾고 사다리가 되어 줄 사람들만 곁에 둡니다. 그 모습이, 솔직히 말하면 구차하고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물질적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누릴 것도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가슴속은 왜 그리 비루해 보이는 것일까요. 속이 허전하고, 오히려 비굴해 보입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제발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깁니다.
요즘 전 세계 절대권력자들의 욕심이 민낯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이들은 절대권력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하고, 영원한 세계의 승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 오르기 위해 볼품없고 격 떨어지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권모술수를 밥 먹듯 하며, 이유 없는 이유를 들어 남을 비난합니다. 자신이 올라서기 위해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거짓은 거짓을 덮으려고 염치도 없이 거짓이 난무합니다.
자존심이나 정의, 촌스럽게 그 딴것 좀 버리자~아~~ 너 얼마나 고생했어어~집도 별 볼 일 없던데. 민주화 운동, 그거 해서 그래? 여기 어떻게 왔는데, 지방으로 뺑뺑 돌 거야. 변호사 간판내고 이혼소송 할래? 법률서비스, 그딴 거 할 거야? 서비스업 하려고 고생했어 너.
역사적으로 흘러가긋 가아 아아~내가 또 역사강의 해야 돼? 그냥 권력옆에 있어. 자존심 버려. 잡으라고. 그거 놓치고 나서 잘된 사람 없어. 우리나라 역사에 그런 사람 없어. 어디 있어 이름 대봐.
친일파며 그딴놈들 어때. 다~ 재벌이고, 장차관 하고 우리나라 이거야(따봉). 독립군들 한 달 60만 원 연금 없으면 밥 굶고 살아. 촌스러운 색끼 진짜.. 아니 요즘도 저렇게 철없는 새끼가 다 있나? 요즘 새끼들은 역사 공부를 안 하니... <영화 더 킹 중>
꼭대기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토록 달려들고, 버리지 못하고, 가지려고만 하는 것일까요.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법인데, 올라가려는 욕망에 눈이 멀면 책임은 지우고 싶고 권한만 누리고 싶어 집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더 이상 오를 수도 없는 막다른 꼭대기에서 여전히 발버둥 칩니다.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 드러나면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이 자신을 감쌉니다. 타인들이 비정상이라고 해도, 스스로는 자만심에 빠져 그 비정상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소나무 꼭대기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고양이와 권력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입니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모습이 안쓰럽고, 어이없고, 보기 흉합니다.
이런 현상은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올라가고 싶은 것과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커질수록 어딘가에 줄을 대고 싶어지고, 주변 동료는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아닌 이용 가능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손해 보기를 두려워하고, 권력자 곁에서 더 돋보이려 하며, 그 입맛에 혀가 되어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일의 본래 의미는 스스로의 자유와 성장에서 출발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결국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조직의 시스템에 흡수되어 위로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자유는 점점 멀어지고 종속의 강도만 깊어집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 <노자>
버려야 채울 수 있고, 채워지면 다시 비워야 하는 것이 삶의 순리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를 얻고, 반드시 배설의 과정이 따릅니다. 속을 비워야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사를 가면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내야 새로운 공간이 생깁니다. 머릿속의 답답함을 지워내야 새로운 활력이 채워집니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 같습니다. 채우되 비워야 하고, 비우되 다시 채워가는 과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런데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 단순한 이치를 외면합니다. 주머니가 찢어져도 채우려고만 합니다. 영원히 채우려다 배가 터져 결국 움직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염치도 부끄러움도 사라진 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자식과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욕심이 앞서 부끄럽게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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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져가는 것. 올라가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려올 줄도 아는 것. 올라가는 길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스스로는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것. 채워가면서도 비우고, 비워가면서도 채워가는 그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요.
절대로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익숙한 것을 버리려 하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결국 진짜 어른이 됩니다.
오늘 아침, 창가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가 가슴속 답답함을 씻어 줍니다. 이 소소한 자연의 의미와 삶의 가치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다시 사회로 나가는 시간이 오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시간을 준비하며 살고 싶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주변의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오는 시간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간직한 채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