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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Dec 11. 2021

겨울 풍경에 담긴 외할머니의 사랑

어린 시절 시골 겨울 풍경 추억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 가면 부엌에 검은 큰 솥이 있었다. 늘 밥을 하실 때는 여름에 나무 장작을 준비해 둔 장작을 지핀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셨다. 우선 쌀을 솥에 얹고 장작을 가져와 아궁이 옆에 쌓아 놓는다. 또한 옆에는 손으로 돌려 바람을 만드는 풀무가 있었다. 우선 겨와 마른 솔잎을 이용해서 풀무로 바람을 실어 아궁이에 넣는다. 그 위에 장작을 넣는다. 성냥으로 솔잎에 불을 붙인다. 그때부터 우리의 코와 입은 연기의 매움에 경련을 한다. 코에서는 콧물, 눈에서는 눈물,.. 불을 지필 초기가 가장 어렵다. 꺼질 것 같으면 솔잎과 마른 겨를 계속 넣는다. 그 리고 풀무질을 계속해야 한다.



불이 안정이 되어 가면 그때부턴 쉽다. 장작을 포개어 넣고 불 소시 개로 속을 저친다. 그냥 앉아서 불타는 것만 보고 있을 수 없다. 땅바닥에 불소시개로 낙서를 한다. 엄마 이름도 써 보고 예쁜 여자 짝꿍 이름도 써 본다. 검은 솥에서는 밥이 되어간다고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지금 생각하면 옛 어르신들이 정말 지혜롭다. 아궁이의 문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아궁이는 1석 4조의 모습을 보인다. 처음은 밥을 짓게 하고 두 번째는 온돌 안방의 아랫목을

데워주고 셋째는 태우고 남은 숯으로 화로의 온기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군고구마와 군밤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불이 타오르고 밥이 되어 갈 때쯤 마당에 나가 외할머니가 사시던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 풍경이 없다. 동네 집집 굴뚝마다 흰 연기가 나오고 저 멀리는 해가 저물어 노을이 동네를 물들인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를 바라보면 할머니는 검고 큰 솥뚜껑을 열고 큰 나무 주걱으로 흰밥을 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은 정말 예술이다. 그 밥을 종기에 퍼서 상을 차린다.


 

예전에는 식탁이 없었다. 다 밥상이다. 밥상에는 열무김치에 빨간색 김장배추김치, 그리고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다. 찌개로는 할머니가 직접 쑤신 메주로 만든 청국장, 청국장에는 쉰 김치와 흰 두부가 송송송 들어 있다. 그러면 밥상은 완성이다. 상을 안방으로 가지고 간다. 안방의 온기와 밥상의 온기가 만나 사람들의 온기가 된다.


밥상은 온통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김의 향연이다. 솥에서  익어간 흰쌀밥은 그냥 그 자체가 달콤한 반찬이다. 숟가락에 쌀밥을 퍼서 빨간 열무김치를 잡고 무를 꽉 깨물어 먹으면, 아! 정말 그 맛은 잊을 없다. 미치도록 맛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입에 침이 고인다. 밥을 먹고 상을 치면 그때부턴 동네 한 바퀴 산책이다. 외할머니 댁은 시골이라 동네 한 바퀴 돌면 모두 다아는 분들이다. 개들도 동네 사람들을 알아본다. 외할머니 댁 마당에서 저 멀리 노을을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너무 정겹다.

동네 할머니들은 저녁을 마치고 마실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할머니들이 한 두 분씩 외할머니 댁으로 모이면 민화투가 시작된다. 지금은 고스톱이 게임 세계를 평정했지만 이 때는 무조건 영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게임을 중간에 멈추게 하는 스탑이 없다. 끝까지 가서 서로의 약이 많고 적음을 따져 승패를 갈랐다. 그만큼 진득하니 기다리고 관망할 줄 알았는데 그 자리를 성질 급한 고스톱이 자리 잡았다. 소위 백성민이란 의미의 백성들이 즐기는 민화투는 그 시대의 최고의 게임 문화였다.


할머니들 옆에는 화로가 있다. 그 속에 밤과 고구마를 외할머니는 숨겨 놓았다. 그리고 동네 할머니들이 화투에 열중할 때쯤 그것들은 계속 뜨겁다고 소리를 친다. 세상으로 자신들을 꺼내 달라고 안달한다. 방에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 외할머니는 군밤과 군고구마를 화로에서 꺼내 껍질까지 까서 주신다.


 어렸을 때는 그 고마움을 알지 못했다. 너무 어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손자를 아껴주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나는 이제야 느낀다.

그때 할머니의 손등은 나무껍질보다 더욱 거칠었다.


four seasons of life 중 by wood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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