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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Nov 09. 2022

생각의 자유. 생각 박스에서 벗어나는 법

다양한 책 읽고 상상력을 키우며 유연해져라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의지를 한다.


생리현상을 가리고 스스로 걷고 행동하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호기심에 가득해진다.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의 말, 자연환경 등 모든 게 궁금증의 연속이다. 학교를 가게 돼도 궁금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궁금증이 만들어진 틀과 박스에 가려져 사라진 듯 행동한다. 유현준 교수가 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느가"라는 책을 다시 한번 읽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온다. "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상상의 전기라는 시를 살펴보자.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 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에 맞닥트리고 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왜 아이는 순수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다. 궁금증은 순수하기에 더욱 강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생각들이 진행되면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왜 그런지를 알고 싶고 더 깊게 빠지게 된다. 백지에 새로운 색을 칠하고 싶고 새로운 색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에 궁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궁금증이 많으니 질문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의 소프트함은 창조를 낳고 창조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간다. 그게 거대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생각의 소프트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학교라는 틀에서 어린 시절부터 청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특히 초, 중, 고등학교까지는 대학교를 향한 강한 열망으로 문제집을 푼다. 또한 학원이란 갇힌 곳에서 학생들을 사육하듯이 문제 푸는 기계를 만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같이 범인들은 절대로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 시스템적으로 자본주의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이 틀과 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무엇을 해도 정규 교육의 틀에서 교육을 받아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은 아이들에게 놀며 멍 때리는 시간을 부여해 주지 않는다.


놀며 멍 때리고 자연 속에서 뛰어다녀야 새로운 생각과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우리들에게는 지금 당장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누가 그런 선택을 욕할 수 있겠는가! 대치동에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 늦은 시간까지 경쟁하고 초등학생이 학원 갔다 와서 새벽까지 앉아 학원 숙제를 하고 있고 그들에게 친구들은 학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지 뛰어노는 친구들이 아니다. 이들에게도 멍 때리고 친구들과 놀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학원에 갔다 오면 집에는 휴대폰이 그들에게 힘듦을 달래준다. 결국 아이들이 놀며 멍 때리며 생각의 틀을 벗고 새로움을 창조할 시간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학원과 휴대폰의 세상에 그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도 그 박스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회사도 다를 봐가 없다. 회사라는 공간은 직급이 존재하고 상하관계에 따라 움직여지는 곳이다. 회사에서 늘 하던 일에 빠져있으면 다른 곳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볼 필요도 없고 그 일만 하면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를 알아갈 기회도 없고 소통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일꾼들은 한 곳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에 모여 일하게 되었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서 업무는 분업화되었고 분업화가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근무를 해야 했다. 공간의 협소함을 극복하고자 사무실은 고층화 되었고 고층빌딩 속에 사람들은 그 안으로 속속 들어갔다. 건물 속에 하나의 개미가 되어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일 년을 보내고 몇십 년을 근무한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회사라는 틀에 맞추어지고 그것이 전부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금은 사무실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자율좌석제와 워케이션,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의 제도로 사람들에게 틀에 박히지 말고 자유롭게 일하며 집중하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회사의 틀은 유 연화지 못한 게 현실이다. 아무리 제도로서 보충을 하려 해도 조직이란 곳은 묶인 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기가 여간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곳이 늘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만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규율과 틀에 사람들을 맞추어 가고 그들에게 떨어지는 일을 쳐내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른 색을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성과를 창출하려고 할 때 규칙과 규율이 존재해야만 하고 그에 따라 틀을 만들어 그것에 맞게 행동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조직의 생리이다. 그러다 보면 개인의 생각도 궁금증도 모두가 회사의 틀에 맞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를 통해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지금 현재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본주의라는 또 큰 틀에서 그 굴레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헨리데이비드 소로우처럼 3년 이상을 월든이란 호수 주변에 오두막을 짓고 글 쓰고 자연과 생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자본주의 틀, 회사라는 틀, 학원과 학교라는 틀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자신을 찾고 창조적이고 유연한 생각을 갖고자 이런 모든 틀을 거부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모습은 그런 틀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게 운명이다. 매트릭스 영화 속 철학을 보면 결국 주인공 레오가 사는 곳도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틀과 박스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박스가 만들어 놓은 형식에서 우리를 맞추어 가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 틀을 깨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들을 다 거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도 살아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박스와 틀을 깨고 창조적이고 유연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늘 고민하며 살아가 간다는 것이다. 틀과 박스가 있어 안전하지만 그 안전장치를 어느 때는 자신의 생각과  상상으로  벗어나 보는 것이다. 그런 유연하고 창조적 생각들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생각의 자유를 줄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세상 밖의 이야기도 들어 보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쓰고 상상력을 수필과 소설로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늘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것에 고민하며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글로 시각화하고 작게라도 행동해 보는 것이다.

회사의 틀 속에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회사라는 곳이 부정적인 곳은 절대 아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드린 시간을 통해 보상을 받는 것이다. 보상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틀 속에서만 생각이 굳어지면 그 사람은 그 고정관념이 이 세상을 보는 전부의 스펙트럼이 되고 나중에는 자신의 삶이 너무 작아지게 되는 우를 범한다.


깨어있으려 노력하라.

그러기 위해 다양한 책을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상상하라. 유연해지기 위해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써라. 그리고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 가라. 이 방법은 당신을 깨어 있게 할 것이고 당신을 유연하게 하며 굳어진 생각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할 것이다. 생각의 자유는 당신의 영역을 넓혀 나갈 것이다. 상상하고 유연해져라. 그것이 깨어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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