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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an 22. 2023

어머니는 철학자셨다.

철학을 나는 어머니에게 배웠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어머니는 실천하시는 철학자셨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 아파트가 없었다. 동네가 모두 1층 주택이었다. 집집마다 마당이 있고 동네에도 넓은 동네 마당이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집집마다 들렸다. 춥건 덥건 동네 마당에서 아이들은 시끄럽게 놀고 있었다.


 반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머니는 늘 부엌에서 정신없이 일들을 하고 계셨다. 무슨 일들이 많은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꼬마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자의 주택에는 굴뚝들이 있었다. 군불을 때면 하얀 연기가 하늘로 날아갔다. 아침, 저녁에는 부엌에서 나는 음식의 향기와 같이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하늘로 날아갔다.


추운 겨울에는 온돌방이 따끈따끈해야 했다. 군불을 붙이려고 하면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한쪽에 챙겨 놔야 했다.  늘 어머니는 분주했다. 산에서 솔가지와 마른 나뭇잎을 포대기에 담아서 추운 겨울을 준비했다.


 부엌에는 찬 바람이 늘 들어왔고 부엌의 요리에서 나오는 온기만이 어머니를 보호해 주었다.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군불을 피우고 그리고 물을 데워 수북이 쌓인 빨래도 해야 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온몸을 일에만 소진했다. 잠시 방에 들어와 피곤함과 힘듦을 잊고자 누워 있다가도 다시 부엌으로 달려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4명의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위해 도시락을 8개까지 싸셨다. 매일 전쟁이었다. 받아먹는 나의 입장에서는 맛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어머니의 힘듦을 다 헤아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 투정을 했던 철없는 꼬마였다는 게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머니는 철학자셨다.


철학을 배운 것도 아니시다. 책을 통해 아신 것도 아니시다. 살아오는 시간이 고통이고 힘듦의 연속이셨다. 아버지만 믿고 결혼을 했고 어려운 집안 살림을 자신의 손과 몸으로 버티셨던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면 늘 어머니 손은 차가우셨다. 손에 물을 묻히지 않을 수가 없다. 군불을 지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자식과 남편만 있는 소가족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누이, 시동생,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자리였다.


 집의 굴뚝은 쉴 새 없이 연기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아침부터 시작이 아니라 추운 새벽부터 시작이었다. 어르신들 밥상을 준비하랴 아이들 학교 챙기랴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점심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까지 오셔서 식사를 준비해야 했고 그 일이 끝나면 빨래와 집안일들을 손봐야 했다. 저녁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또한 분주하다. 저녁이 끝나면 수많은 설거지거리를 혼자서 치워야 했다.


가족들의 불만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다. 그리고 추운 밤이 되면 군불이 꺼지지 않도록 추운 바람을 막는 옷을 입고 집안 곳곳의 군불을 순찰해야 했다.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은 많은 일들을 그 작은 체구 혼자서 해 내셨다.

 

어머니는 철학자셨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철학을 몸소 실천하셨다. 연세가 드시고 이젠 자식들도 외부로 출타해 있을 때 적적함을 책과 같이 보내셨다. 어머님은 고등학교만 나오신 분이셨지만 특히 신문과 책 읽는 걸 좋아하셨다. 연세가 드실수록 책에 대한 애정을 보이셨다. 특히 스님들이 쓰신 책을 좋아하셨다. 나에게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아라.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 제사도 필요 없다. 그냥 나 살아 있을 때 한번 더 보고 전화 통화 한번 더 하자" 부처님처럼 차분하게 말씀을 전달하셨다.


한동안 어머님은 젊었을 때의 시집살이로 인해 우울증과 화병에 걸리셨었다. 너무 힘들어하셨고 고통스러워하셨다. 몸도 많이 쇠약해지셨다. 그래도 늘 자식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시고


"내 걱정은 말아라. 너희만 행복하면 엄마는 행복하다"


당신을 걱정하기보다 늘 주변인들을 걱정해 주시고 애정을 주셨다.


어머니는 철학자셨다.


집에 여유가 없어도 동네분들에게 늘 베푸셨다. 오시는 손님은 그냥 보내지 않고 대접하고 낯선 사람이 물 한잔 달라고 하면 늘 물만이 아니라 떡이라도 드렸다. 김치를 많이 하면 이웃집에 갖다 드리고 파전을 하면 가족끼리만 먹지 않고 동네분들도 갖다 드렸다. 떡을 하게 되면 양을 더 해서 지인분들에게 싸서 직접 드렸다.


 동네의 대소사는 모두 어머니의 작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동네의 모든 잔치에는 어머니가 가서 일하는 날이었다. 품앗이를 하고 나서는 쌓인 집안일을 새벽까지 해 내셨다. 동네이웃은 가족이었고 어머님의 배려는 가슴속에서 나오는 진정한 사랑이었다.


어머님은 책 속에 있는 철학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철학자셨다.


추운 겨울에는 더욱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추운 고난과 힘듦을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고 자식과 가족을 지탱해 주신 행동이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있다. 어머니의 추운 겨울 차가운 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굳어진 손가락 마디마디가 세월의 흔적을 전달했다.


설날은 차례를 준비하고 집안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대접해야 하는 날이었다. 밤낮 할 것 없이 부엌일을 해야 했다. 가족들은 설을 즐거워했지만 어머니는 즐거워할 시간도 없이 손에 물을 묻히며 추운 겨울을 보내셔야 했다. 어머니에게는 잠시 부엌에서 지쳐있는 몸을 쉬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님의 인내와 참을성, 그리고 책임감은 지금의 나를 만드셨고 넓은 애정은 내가 성장하는 토양을 주셨다. 어머님의 순수함과 착함은 나의 심성을 만들었고 어머님의 포용력은 나의 포용력을 성장시켜 주었다.



어머니의 굳은 손마디 마디의 촉감과 거칠어진 손등을 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실천하는 철학자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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