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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May 19. 2023

회사에서 11번 이직...그리고

각성의 시간은 우리에게 자아를 되돌아보게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마라.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실험은 많이 할수록 더 나아진다.
- Ralph Waldo Emerson -


늘 새로운 환경에 접할 때마다 방황과 갈등이 존재했다. 


새로운 환경의 강도가 순간순간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로움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했다. 새로움이 다가올 때 과거의 익숙한 근육들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뇌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사고는 새로움에 적응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아의 방황을 이끌어 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들어갔을 때도, 군대에 입대했을 때도, 대학에서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늘 방황의 그림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 방황과 갈등의 시간이 존재할 때마다 스스로를 많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회사에 입사해 다양한 업무를 접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순수했다고 각성시킨 부서가 재무팀이었다. 재미없는 숫자와 문서뿐이고 늘 야근의 연속이었다. 팀장에게 부서를 옮겨 달라고 했다. 현장에서 일을 해 보고 싶고 현장을 알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여러 만류에도 불구 결국 현장 부서로 이동을 했다. 아마 신입이 부서를 옮겨달라는 요청에 선배들은 괘심 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새롭게 옮긴 부서가 객실기획이었다. 현장 속에서 일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설렜다. 3년 정도 일을 하고 있을 때 구매팀으로 업무가 이동되었다. 구매팀 일을 하며 관련부서와도 지속적 의견충돌이 발생했다. 선임들의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갈등을 일으켰다. 회사에 문제가 발생하여 감사를 받게 되었고 그게 오히려 전환위복이 되었다. 구매 3년 차에 감사를 했던 그룹 경영진단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여러 회사의 상황들을 파악하고 경영진단을 하며 업무를 배워갔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며 사람과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새삼 더 크게 느꼈고  회사의 좋지 못한 일들도 개선시켜 나가기도 했다.



경영진단팀을 마무리 짓고 처음 해 보는 인사팀으로 발령이 났다.


 3년이란 시간을 인사에서 보내며 리더와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더 깊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케팅팀으로 발령이 나며 처음 접하는 마케팅을 공부하게 되었다. 인사와는 또 다른 업무 스타일을 배워나가야 했다. 인사는 외부로 정보를 알리기보다 내부적으로 인력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고 인력을 성장시키는 일이었다면 마케팅은 외부로 회사의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보수적보다는 진취적으로 앞으로 나서야 하는 일들이었다. 상반된 부분들이 있었지만 또 다른 경험이었다. 1년 후 기획팀으로 업무 변경 요청이 와  기획업무를 시작했다. 기획 2년 후 식음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고 총 9개의 업장을 관리하며 직원관리 및 노조와의 관계도 형성해야 했다. 그리고 대팀인 지원팀으로 업무가 변경되었다. 지원팀은 6개의 팀을 한 팀으로 묶어 대팀제를 운영하는 형태였다. 인사, 노무, 회계, 시설, 구매, 기획, 총무까지 다양한 업무가 섞여 있어 팀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숙제였고 젊은 직원들을 어떻게 이끌고 가야 할지 과제였다. 노조와의 갈등을 처리하는 것도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그런 후  신규 업장을 오픈하고 기존 업장들도 같이 운영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적은 인원으로 새롭게 오픈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시간조차 촉박한 상황에서 직책을 버리고 실무형으로 같이 일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따가운 질책도 받는 시간이었다. 힘든 과정 속에 오픈을 한 후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았다.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일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일이 쏟아질 땐 그 안에 파묻혀 있느라 이런 생각에 빠질 겨를이 없었어요. 하지만 바쁜 시기가 지나 시간이 생기거나 좋지 않은 성과로 슬럼프가 찾아오면 제가 하는 일의 부족한 면, 채워지지 않는 면이 떠올라 지속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칭찬하고 싶은 점은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겁니다. 바쁠 때 후순위로 미뤄놓긴 했지만 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제 일의 의미를 묻고 또 물으며 파고들었습니다. 고민이 길어지면 아슴푸레 뭔가가 보이는 걸까요? 제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도 차츰 눈앞의 광경이 드러나듯이 저도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제게 이 일이 요구하는 소양이 꽤 있고, 저와 꽤 잘 맞는 일이라는 것을!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 최인아 저자>



 2~3년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부서를 옮길 때마다


 업무, 환경, 사람들이 다 새로웠다. 모르는 업무들을 접할 때는 열정적으로 배우려고 했고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존 환경에 사람들과의 갈등도 존재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팀을 세팅하고 인력들의 장단점들을 파악해 나갔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들이 존재했고 고민들이 생겼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런 과정들 속에 스스로의 답답함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책을 접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답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웠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회사라는 현실에서는 늘 양면이 있는 법이었다. 긍정과 부정이 존재하며 내적 갈등들이 항상 존재했다.



나태하거나 답답함을 느낄수록


나를 더 앞으로 전진시켰다.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인지도 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이 있고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 인간으로서 현재의 자리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얻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다니며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어느 때는 새벽에 잠에서 깨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길을 2시간 동안 걷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머릿속의 답답함들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걷고 또 걷고 하다 보면 머릿속 근심과 갈등들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갈등은 시작되었다. 그런 갈등과 방황 속에서도 나를 이끌어 주는 회사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주변 가족과 친구들이 존재했다. 답답함을 푸는 것도 나임에도 그 동료들은 나에게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 주었다. 늘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있었고 그런 사람의 향기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결혼을 하기 전 결혼을 해야 할까도 고민했었다.


혼자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 아닐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가정이란 중심이 생겼고 흔들림은 많이 안정화되었다. 아이의 탄생을 보고 아이를 키우면서 삶이 나의 삶만이 아닌 가족의 삶으로 전환되었고 가족이라는 에너지는 살아가면서 매우 소중한 힘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회사에서 리더로서 부족한 나를 만나고 있고 회사라는 곳에서의 역할과 그리고 회사를 떠날 시점 나는 무엇을 찾아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직책은 회사에 있을 때이지 회사를 나갔을 때는 아저씨일 뿐이다. 그리고 회사인으로서의 내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갈 거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의 깊이를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으로의 슬픔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_톨스토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아들과 자주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는 너로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내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질 때까지만 살고 누구에게 의지해야만 할 때는 존엄사를 하고 싶다"라는 말을 가족들에게도 한다. 결국 죽음을 누구나 맞이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나에게는 역사가 되었다. 언제까지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남은 시간 동안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누구에게는 흔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걸어온 시간들이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모든 순간순간들, 그리고 새로운 변화들이 존재할 때마다 각성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 그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각성의 시간이다. 나에게는 과거의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부족한 자아를 보며 겸손하게 배우며 살아왔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삶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것을 누구도 예단해서도 안 된다. 맹목적 낙관주의도, 염세주의도 아니다. 새옹지마는 현실적 낙관주의가 맞을 것이다. 삶을 누구도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인식하며 자신이 지향해야 하는 곳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속에 나의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가고 싶고 그러기에 고민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모든 순간들이 각성의 시간이고 성찰을 시간이며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대학 때 방황하며 만들었던 나의 좌우명인 '생즉도, 생즉학: 사는게 길을 찾아 가는 여행이고 사는게 끝없이 배우는 과정이다'이란 말이 나를 이끌고 있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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