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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un 13. 2023

[책리뷰.요약]나는 길들여지는 것에 반대한다.

껍데기로 살 것인가, 알맹이로 살 것인가

제목 자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주체적 삶을 살아가며 기존 제도권이나 시스템에 귀속되어 살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미로 다가온다.


익숙한 것들에 길들여지고 현재 시스템에 종속되고 자아를 잃고 헤매고 있는 방랑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주어진 것들에게 아무 저항 없이 따라가고 스스로가 어디를 가는지조차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며 팔로워로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을 표지에 니체의 말을 실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창준 저자는 리더십 개발 전문 컨설팅사인 guru people's (주)아그막의 대표이며 경영학 박사시다. 사람과 조직의 성장이 진정성을 회복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시대적 사명에 천작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실천적 방법론을 개발, 보급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_저자 소개 발췌]


진성리더를 발굴하고 진성리더로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자 진행되는 진성리더십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진성리더십을 지금 참여하고 있다. 참여하면서 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나는 누구이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의 질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창준 원장님을 알게 되었다.


늘 수업과 글로 인사이트를 주시고 늘 오픈 마인드로 도반들을 지도해 주신다. 직접 수업을 통해 이야기도 공유하기도 하며 진정성에 대한 물음으로 리더십을 실천하며 전파하는 모습이 진정리더로서 다가오는 분이시다.


도대체 책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늘 진성리더십 프로그램에서 말씀하시는 진정성을 통해 자신의 정신모형을 만들고 스스로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으라는 말씀을 하시듯 하다.


 각자의 진북을 찾아 가는데 멘토 역할을 해 주시는 원장님은 책 속에 어떤 색으로 비칠지 궁금했다.


"나는 길들여지는 것에 반대한다" 책은 진성리더십의 이론과 실천 속에 쓰인 책으로 느껴진다.


진정성을 갖고 있는 진성리더들을 육성해서 산성화 된 토양을 개선하고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주며 더 많은 진성리더들이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려는 노력들을 책 속에 담아 정리한 느낌이다.


우리는 자아를 잃고도 자아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순종하고 주체적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담대한 용기와 신념을 요구한다. 자신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 스스로가 성숙되어 가고 주체적 삶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고난은 성장하는 자아가 만나게 되는 통과의례이며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전기작가가 되어 스스로의 스토리텔링과 프레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 자아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만들고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목적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 여러 난관이 있을지라도 목적을 향해 나아가되 일상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혁명을 꿈꿔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혁명은 요란한 북소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움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도 진정한 삶을 향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욕망을 즐기기 위해, 혹은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목적이 되어줄 이상을 찾아내고, 그것을 쫓는 과정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권력과 자본이 획책하는 거짓인생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거짓이 되어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담대히 도전과 모험의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나는 이것이 참된 인생을 찾아가는 진정성의 여정이라고 믿는다. "<프롤로그 중>


그리고 이 책 표지에 굵은 글씨체로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껍데기로 살 것인가, 알맹이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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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여지는 것에 반대한다. 이창준 지음> 책 속 발췌 내용



진정성의 문제가 사회구조를 혁파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오늘날 우리들의 불행은 사회적 부조리를 탓하면서 정작 자신의 거짓을 멈추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중성에 그 진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무엇보다 너 자신에게 진실하여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 거짓될 수 없는 법"


타인의 눈으로 평가되는 위태로운 성공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다한 후에 느끼는 진실함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임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한 삶을 원한다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대면해야 한다. 그래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나를 긍정하게 하고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할 본원적 자신감을 부여한다.


진실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무엇이 우리의 인생을 가짜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세 가지 원인 즉 불안, 권력, 이기심 때문이다.



개인의 자아가 일시적이고 파편적인 성격구조를 가졌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마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처럼 목적, 방향, 경로를 잃어버리고 정처 없이 떠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저자가 무너진 것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장차 어디를 향해가려 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해독불가의 삶, 그게 오늘 우리들의 자아상이다.


삶은 스냅사진처럼 그때그때의 조각으로 흩어지고 우리에겐 역사적 맥락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내적 질서가 사라졌다. 우선 직장은 더 이상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임시계약직 인생이다. 온오프가 공존하는 삶을 공간은 우리를 다중인격자로 만들었다. 시공간적으로 분리된 일과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일과 가정은 어느 순간 서로 대립적 역할을 요구하면서 삶을 이중적으로 분열시켰다.


불안은 맹목적인 성취와 쾌락의 추구를 부채질한다. 이런 행동은 현실감각을 잃게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른 것에 맡겨놓는다는 점에서 중독적이다. 거기에서 거짓인생이 탄생한다.


불안을 없애려면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불안과 대면해야 한다. 불안을 조장하는 원인과 사회적 압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의지를 꺾는 것들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고 무엇이 참된 인생인지를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쇼생크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곁을 지켜준 30년 가까이 복역 중인 레드가 말한다. " 이 담벼락이 참 웃기지, 처음엔 다들 중오해. 그러다가 차츰 길들여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지. 그게 바로 길들여지는 거야."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 계획에 실무책임자로 참여했다. 재판 과정 내내 자신은 군인의 신분이어서 상관인 하이드리히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학살범이 아니라며 무죄를 항변한다.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아이히만이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간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악의 평범함이다. 자신은 톱니바퀴의 이에 불과하며 단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모습은 얼핏 돌아보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문제는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무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별 문제인식 없이 사회가 써 준 각본에 따라 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뿌리 깊은 욕망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체념과 순응이 만드는 거짓인생을 거부하라. 우리가 체념과 순응을 택한다면 첫째, 자신의 잠재력과 재능을 제한하게 된다. 둘째, 체념과 순응을 택한다면 우리는 지배 권력이 요구하는 것과 다른 제도, 관습,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배척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존엄과 도덕적 자부심을 잃는 수모를 감당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일은 관념의 조작이다. 그런 관념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른 어딘가에 천국이 있을 것이라 속삭이지만 삶은 매 순간 마주하는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탈주를 꿈꾸고, 남겨진 이들은 탈주한 사람들의 허구적인 스토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떠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떠나는 일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의지이며 속박과 구속에도 불구하고 제 땅에 두 다리를 박고 버티려는 비장함과 결연함의 소산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과 남을 탓하거나 혹은 현재의 억압적 구조에서 도망치듯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삶과 자신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약을 투여하듯 고통을 잊고 쾌락으로 도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다의적으로 해석되지만 일차적으로는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신분, 역할 등의 가면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념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유하고 독창적이다.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자기 인식과 자기 규제라는 과정을 통해 다음의 세 가지 차원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째, 고유성의 확보다. 고유성이란 내적 특성으로 인한 한 개인의 차별성을 말한다.

두 번째, 진정성을 위해서는 일관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세 번째, 통합성의 확보이다. 일관성이 시간적 규합성을 의미한다면 통합성은 공간적 규합성을 의미한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말은 다양한 이질적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구심점에서 이 모든 역할들의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그의 삶이 안정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 점유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들은 필연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다. 가정을 돌보면 일이 망가지고, 일에 집중하면 가정에 소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차원 높은, 즉 각 역할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메타인지적 관점을 갖고 있어야 통합이 가능해진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은 이 안에서 고유하고, 일관되며, 통합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계와 모순을 뛰어넘고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이상과 좌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인식, 자기 규제이다. 자기 인식과 자기 규제는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면서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도로 촉구한다.


진정성은 완전무결한 어떤 목적지가 아니라 되어감의 과정이다. 삶의 방편과 술수를 획득하기 위한 성췩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성숙시켜 가는 과정이다. 의식을 성숙시켜 간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을 확대하고 달리하고 깊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관점이 확장되고 깊어지며 포용력이 생기고, 나아가 이전 삶의 방식에 대한 자기 통제력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의식의 성숙 과정이다.


찰스 귀논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성 있는 개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반성적 개인이 되는 능력이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자각과 통찰을 토대로 자신의 목적, 가치, 신념을 확고히 함으로써 자신의 고유성, 일관성, 통합성을 확보해 가는 과정이다.


삶이 그러하듯 성숙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우리는 진정성을 향해가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순간을 진실로 채우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불처럼 산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허망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비록 초개처럼 부서질 운명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진실이다.


괄목상대, 문리가 트다, 철이 든다와 같은 말들은 관점이 변혁되면 자기 자신, 신념체계, 삶의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가는 고난과 시련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의 고유성, 일관성, 통합성을 검증해야만 알 수 있다.


나는 되어감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나인 것이며 역경과 시련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 안전한 오두막에 머물러 루틴을 반복하거나 혹은 부모나 사회가 만들어준 대본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되어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전기작가로서의 자아는 자아의 진정성을 구현해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우리는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을 알게 되고 명료한 자아감각을 갖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은 결국 스토리의 형태로 조직화된다. 그리고 스토리는 스토리텔러의 정체성을 더러운 낸다. 내가 누구였으며, 누구이며, 누구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자아개념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아의 발견은 정형화된 그 무엇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수정하고 변형하며 창조해 가는 과정이 된다.

둘째, 자아의 서사는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의미체게 즉 정신모형을 만든다. 가치 있고 의미 잇는 것들은 삶의 목적, 비전으로 형상화되고 우리는 이를 중심으로 사태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이에 따라 일관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셋째, 우리는 이야기하는 동안 자기 일치성을 경험한다.


명료한 자아개념과 삶을 안내하는 정신모형이 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자기 답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 삶의 동기, 의지를 재확인한다.


정신모형을 이루는 요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삶의 이유로서 존재이유를 설명하는 인생의 목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를 지켜가기 위한 원칙으로서 가치이다. 목적과 가치가 서사의 중심축이 된다.


어떻게 진성이 있는 삶을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유효적 추론을 필요로 한다. 주어진 조건과 자원 때문에 망설이기보다 주어진 조건과 자원을 토대로 어떤 행동을 시작해야 하는지 그 행동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다. 목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면 행동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진정한 혁명은 요란한 북소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한다. 조용한 혁명가들은 분노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직면한 현실을 도전과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문제이 맞서 조용히 그러나 창조적으로 대안을 찾는다. 먼저 자신의 신념을 잠재우지 않아야 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고 때로 통념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때 언어, 장식, 행동을 활용할 수 있다.


설득, 작은 성공의 경험, 연대를 구축하여 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인류역사는 오랜 시간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나는 온전한 너 자신이 돼라는 자기표현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너 자신을 초월하라는 자기 상실의 삶이다. 자기표현은 고유한 자신을 완전히 표현하라는 것이며, 자기 상실은 자신을 억제학 더 큰 이상과 대의에 헌신하라는 주문이다. 나는 상반된 이 두 가지의 입장은 진정성 있는 삶을 생각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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