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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Aug 27. 2023

첫 기억, 우리를 설레게 하네

삶은 이어졌고 첫 느낌과 기억들은 우리의 삶을 이어준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첫 기억이라고는 정의하고 싶지 않다.


순간마다 첫 기억을 간직했지만 지금은 기억이 안 날 뿐이다. 우리는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을 첫 기억으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첫 기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이란 단어보다는 삶이 흘러가는 대로 기억하고 버려지는 기억들이 생겼다. 딱히 첫 기억을 기억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억력이 나쁜 것의 장점은 같은 일을 여러 번, 마치 처음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


하지만 우리에게는 처음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순간순간이 처음일수도 있고 지금 이 순간도 삶의 처음일수도 있다. 기억조차 없는 것들을 뇌 속에서 꺼내려해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의 설렘과 처음의 긴장감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의미가 있다. 순수함이 묻어 있고 미숙함이 묻어 있어 있어 우리의 가슴속에 의미를 던져주는 듯하다.


성숙하고 노련하다는 것은 처음이 아니고 이미 많은 시간들을 지나왔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성숙함이 순수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처음이란 단어를 입고 순수함을 보여주었던 기억을 찾아보지만 어떤 것이 첫 기억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는 순수함과 설렘이 있던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과거의 나를 통해 되새김질해 보고 싶다.


50대의 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40대의 방향 설정에 대한 고민들보다 지금의 시간들을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고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50대의 첫 기억, 첫 느낌은 진짜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이다. "어느새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라는 독백을 하며 50대의 초입에 들어왔다. 친구들을 만나도 건강을 먼저 물어보고 안 하던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50대의 첫 기억은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떤 의미로서 만들어가며 살아갈 것이며 건강을 유지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죽을 때까지 움직이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0대는 인생 방향에 대한 의문과 그에 따른 고민들이 많았다.


열심히는 살아왔지만 진짜로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문을 하게 되었다. 회사 내에서의 포지션도 고민이 되었다. 열심히라는 단어를 잊지 않고 살아왔지만 40대의 첫 기억, 느낌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 내 상하관계의 압박,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계속 찾고 헤매며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었다.



30대는 회사생활의 방황이었다.


29에 입사하여 30대에 들어갈 때쯤 회사를 계속 다닐까의 고민들이 밀려왔다. 회사생활의 답답함이 나의 감정을 눌렀고 혼자라는 외로움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진해 왔던 것 같다. 하나씩 진보하고 성장해 나가면서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혼자의 시간이 힘이 되어 주었고 누구의 눈치를 보는 삶보다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한 시간이었다.


만일 당신에게 주어진 삶이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 시간 동안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1분 1초도 오직 당신만을 위해 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1주일은 너무나 짧은 시간임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당신이 좋아했던 것을 더욱 사랑하고 당신에게 힘을 주었던 풍경들을 더욱 눈여겨봐야 한다. 아침의 작은 햇살과 저녁의 붉은 노을을 마음껏 찬미하며 오랫동안 자신의 그림자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한 묘원을 홀로 산책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것들에게 매일 안부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작별인사를 건넬 시간조차 없이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혼자 사는 즐거움 중, 사라 밴 브레스낙 저자>


20대의 삶은 대학의 아웃사이더였다.


현실과 이상이란 단어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시간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만을 향해 달려왔던 시간 동안 나는 내 인생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푸는 게 전부였지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책들을 읽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학에 오면서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고 준비해 왔던 공부라는 것이 너무 작게만 보였다.


또한 대학이란 곳이 내가 꿈꿔왔던 세상이 아니었다. 너무 이상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대학입학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대학생활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새벽시간에 대학교 도서관에 와서 책과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성적은 바닥을 향했다. 그렇게 대학에서의 아웃사이더 생활은 혼자라는 시간을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군입대가 이런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실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0대는 주어진 환경에서 부모님께 의지하는 시간이었다.


10대의 삶이라는 것이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 활동들이었다. 이 시간을 공부에만 전념하여 원하는 대학을 가는 게 나의 목표였다. 대학에 가서 실컷 놀고 실컷 경험하며 지금까지의 공부를 보상받고 싶은 생각만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엉덩이의 힘을 믿고 10대를 보낸 것 같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나의 모습은


시골의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순수한 아이였다. 늘 마당에서 친구들과 놀고 뒷산에 올라가 계절마다 자연들과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봄에는 마당의 노란 개나리꽃을 보며 기뻐했고 어머니가 냉이를 케면 옆에서 도와주었던 기억이 난다. 여름은 마당에 평상을 깔아 놓고 수박을 가족들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에는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아람을 줍고 엄마옆에 붙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는 눈사람 만들고 눈썰매 타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강아지와 친구처럼 지낸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첫 기억이라는 표현보다는 기억나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순수했던 기억들의 많은 부분들이 지금은 현실적 생각들로 전환되었고 기억나는 느낌이 문뜩 가슴속으로 다가올 때면 감정이 파동을 치기도 한다. 순수함의 가치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하지만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현실적 감각들이 순수함을 대체해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순수함의 기억들이 마음속에서 울렁일 때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지나왔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처음은 순수함과 미숙함을 모두 내포한 단어이다.


처음은 우리 가슴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팠던 기억이라도 순수함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처음의 순간들이 지금 우리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따뜻함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을 이야기하고 순수함보다는 냉철함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 기억되는 처음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고 지낸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동인이 되어 준다.


첫 기억, 첫 느낌, 처음이라는 단어는 왠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만약에 지금 하루하루가 마땅치 않다면 작고 사소한 추억들로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좋았던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경험했던 좋았던 것들은 어떻게든 내 안에 남아서 결국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사소한 추억의 힘,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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