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우리의 감정선을 추억으로 소환한다.
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물방울이 하나둘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바라본다.
밖의 빗소리는 마치 어린 시절 처마 밑에서 누워 듣던 그 빗소리처럼 들린다. 어린 시절 세상의 모든 걱정을 잊고 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빗소리에 잠들곤 했다. 비의 리듬에 맞춰 마음의 운율을 찾았고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춰 나만의 세계로 빠졌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우산 아래 늘 친구들과 뛰노는 그 시절, 우리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놀이터였다. 비가 우리의 옷을 적시고 걸음걸음 젖은 옷을 끌고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우리의 웃음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했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묻어 있는 웃음은 지금도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다.
비는 나에게 음악이었다.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그것은 마치 자연이 주는 선물 같았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연의 기운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은 지났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그때의 그 기분들이 가슴속 어디에서인가 살아 숨 쉰다. 기억에 지워졌던 어린 추억과 소리들이 순수한 감정으로 다시 되살아 난다. 지금도 비가 내리는 소리에 어린 시절의 빗소리가 내 귓가에 작은 음악으로 들려온다.
비는 나에게 순수함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소환해 잊혀진 감정들을 되살아 나게 한다. 비가 내리면 어린아이가 되어 세상의 모든 걱정을 잊고 그저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늘을 바라보며 감성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어 진다. 감성이 전달하는 아름다운 추억이 이젠 나이들어감을 선명히 해 준다.
빗소리는 내 마음속에 숨겨진 감정들을 깨우고 내 영혼을 촉촉이 적셔준다.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며 마음의 문을 열고 그 감정들을 맞이한다. 감정들의 물방울이 나를 더욱 풍부하고 창조적인 작가로 만들어 주는 시간을 선사한다.
비는 그렇게 나의 마음을 적셔준다. 어린 시절 추억들은 아직도 나의 가슴속에 남아 글이라는 페이지에 영원히 살아 숨 쉬게 한다. 거세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음속에 피어나는 감정선들을 강하게 때리고 순수한 감정들을 내심 자제하며 슬쩍 나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창밖의 비는 과거로 이끄는 추억의 문이 되고 나는 그 비의 문을 거쳐 그 시절의 나로 다시 태어난다.
비 오는 처마 밑 어린아이의 순수한 감정이 아직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언젠가는 그 빗속의 운율에 나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겠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때까지 자연의 운율을 느끼며 지금 살아 움직임에 감사하며 하루를 맞이한다.
겨울비 <이정화 시인>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밤새워 어두운 거리에 서서 겨울비를 맞으며
가슴마다 기다림의 등불을 켜고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가로등처럼 뼛속 깊이 사무치는 고독을 삼키며
어둠 속에서 말없이 침묵해야 함을
내리는 빗속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후줄근하게 젖어들지라도
아침이 올 때까지 끝까지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얼어붙은 땅속으로 이별의 눈물 같은 겨울비 하염없이 스며들어
봄이 되면 민들레꽃 한 송이 황홀하게 피워내는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