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장애를 처음 마주한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6월 어느 날이었다. 큰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의 상담요청으로 동네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원장님의 표정이 그리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우리 아이가 떼를 자주 부리나?’ ‘다른 친구를 때렸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 건지 뜸을 오래 들이셨다.
“원장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혹시 저희 아이가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나요?”
“아니요 어머님. 그런건 아니구요. 아이 발달 관련하여 의논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아 따로 뵙자고 했어요.”
큰아이가 말이 좀 늦기는 했다. 보통 아이가 18개월 정도 되면 친숙한 단어로 시작하여 어느 정도 의사표현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여전히 옹알이 수준이었다. 그 외에 밥도 스스로 먹고, 대소변을 가릴 준비에 들어가기도 한다는데 이러한 자조 능력은 거의 바닥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운동신경은 꽤 괜찮았던지라 열심히 뛰어다니기 바빴다. 올라타고 뛰어내리는 건 선수였다. 그래서 말을 좀 가르쳐주고 싶어도 가만히 있질않았기에 말과 자조능력이 좀 뒤쳐졌을 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18개월 다소 어린 개월수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 보낸 이유이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과 같이 있다 보면 말을 좀 배우고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어머님, 잠시 어린이집에 들러주시겠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한번 보시고, 또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한번 보고 비교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가능하시면 발달센터 같은 곳에 가서 발달검사를 한번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발달 관련 공부를 하고 계신다는 어린이집 원장님. 본인이 보았을 땐 우리 큰아이의 발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빠른 개입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쏟아내셨다.
그날따라 유난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원장님이 미웠다. ‘원장님은 그냥 어린이집 원장님일 뿐이지 의사는 아니지 않느냐.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무례한 말씀을 하실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우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아이가 정말 장애가 있는건가?
짧은 듯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나는 “장애”를 간접적으로 경험해왔다. 중학교 시절 정신적인 장애를 갖고 있던 같은 반 친구, 대학시절 한쪽 다리를 절뚝이셨던 교수님, 직장생활을 할 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마주쳤던 장애인 분들. “장애"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수 있다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나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 날부터 나의 검색병이 시작되었다.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고 우리아이와 비교를 해 보았다. 우리아이가 분명 또래 아이들보다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언어장애? ADHD? 자폐? 그 어딘가에 우리아이가 있는 듯 보였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지?
절실한 건 심플한 법. '얘는 괜찮아요.'라는 전문가의 소견 한마디가 필요했다. 그걸 가질 수 있다면 뭐든 못하랴. 유명하다는 동네 발달센터의 검사를 서둘렀다. 아직 개월수가 어려 정확한 검사는 어렵지만 언어가 느린 건 분명하며, 산만함도 높은 편이라 학령기가 되면 ADHD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단다. 희망 섞인 한 마디도 역시나, 빠질 수 없다. 지금부터 적절한 자극을 주면서 언어치료를 성실히 받으면 충분히 괜찮아질 거라는 소견이다. 힘이 빠졌다.
언어치료라니.
그렇게 나는 우리아이의 장애를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은 장애라는 단어를 불편한 듯 불편하지 않게 쓰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던 단어였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겉으로 볼 때 우리아이는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그저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긴 했으니 언어치료는 일단 시작해 보자 마음 먹었다. 집중적으로 언어치료 수업을 받다 보면 분명 말이 금방 터질 것이고 그러면 발달센터 선생님도, 어린이집 원장님도 장애라는 단어는 다시 쏙 집어 넣으시겠지.
그렇게 나의 특별한 육아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