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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Apr 08. 2020

흔들리지 않기: 취준생 일기

19년 9월에 쓰고 20년 3월에 덧붙임

2019년 9월


베를린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시차적응이 안돼 첫날 새벽 4시에 순댓국을 먹으러 나갔던 게 어제 같은데, 한 달만에 열심히 쳇바퀴를 도는 한국인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요즘은 취업 준비에 파묻혀 살고 있다. 내가 원하는 커리어 패스를 밟고 있는 선배분들을 만나며 부러움을 느끼고,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해왔나 반추하며 후회한다. 자기소개서를 쓰며 한 문장, 한 단어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블록 쌓기나 종이접기 부류의 인적성 문제를 풀며 '내가 이런 거 하려고 공부했나?'라 생각하며 현타를 체험하고 있다.



뉴스에서는 경제 악화로 하반기 채용 인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붙여주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가고 싶은 회사의 공고는 사실 2~3개 밖에 없다. 꼭 가고 싶었던 기업들은 채용 설명회는 하지만, 정작 공고를 올리지는 않기도 한다. 기업도 정부 눈치를 봐야 하니 어쩔 수 없나 보다. 기업들이 막상 뽑는 인원도 한 자릿수이니 왜 친구들이 취준 시절 그렇게 앓는 소리를 했는지 실감이 되는 나날이다. 이러다 보니 남들보다는 커리어에 높은 비중 두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싶었다



내가 너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닐까? 주위의 몇몇 친구들처럼 그저 취업 자체가 목표면 많은 곳에 지원할 수 있고, 하나 정도는 붙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이 마음속에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전혀 생각지 않은 직무였지만 상대적으로 뚫기 쉬운 직무들. 채용 인원이 많거나 친구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비인기 직무들에도 매우 조금이나마 흔들렸다.



'여기를 쓰면 합격할 수 있을 텐데.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살 수 있을 텐데. 내년에는 취업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취준 직전 교환학생을 다녀온 베를린에서 다짐했던, 삶의 방식과는 다르겠지만 무엇인가 편할 것 같은 마음에 흔들렸었다.



하지만 주변의 응원에 잠시 이 고민을 잊기도 하고, 새로운 유형의 자기소개를 작성하기 귀찮다는 생각이 반복하다 보니 공채 시즌은 지나갔고, 결국 원하던 직무 4곳과 그저 좋아 보이던 1곳을 지원하게 되었다.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지만, 만일 내가 덜 귀찮았고 주변에서 응원해주지 않아 원치 않던 50곳을 더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2020년 3월의 마지막 날



작가의 서랍에 고이 묵혀둔 이 글을 야근 후 지하철에서 우연히 읽었다. 취준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자 하여 썼던 글인데...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어 완성을 못했었다.



만약 이때 썼던 내용처럼 원치 않은 회사와 직무를 선택했다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아니 하나라도 합격은 할 수 있었을까.



운이 좋게도 난 첫 자기소개서와 첫 면접으로 원하던 기업에 합격해 최단 시간의 취준을 찍고 하산하게 되었다. 정말 운이 참 좋았다.



이번 결과는 좋았지만, 생각해보면 난 많은 시간을 공들인 어려운 일의 끝에서 흔들리고는 했다. 때론 멘탈이 나가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무방비로 결과를 받아들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난 최선을 다 했어라고 말은 했지만 실상 그러지 않았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왜 흔들렸을까? 나 자신과 내가 과연 그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불확실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저 겁을 먹고 도망친 것일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믿고, 왜 이 일을 하는지 리마인드 하고, 그것도 안된다면 주변 친구들을 불러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게 좋았을 텐데. 어릴 때는 그저 마음이 시킨 일이구나 하며 받아들인 내가 참 우습다.



그래도 이번 유혹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만약 내가 나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은 항상 자식의 안위가 우선이니, 어쩌면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나의 관점보다 부모님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게 더 좋다는 얘기였다.



취준 당시 멘탈이 나가 차선책을 찾을 때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내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상상해보면, ‘힘내라’, ‘너는 그것보다 더 뛰어난 사람인데...’ 등이었다. 이러다 보면 집밥을 먹은 것처럼 힘이 나서 잠시나마 부정적인 생각이 없어지고는 했다.



그래도 사실 요즘 난 여전히 흔들린다. 다만 예전보다는 좀 더 확신에 차있으며, 근거도 매번 확실하게 설정하고 일에 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멘탈이 나가 시선 없는 눈처리로 두리번거리겠지만, 다음에는 덜 흔들리지 않고 싶기에 이렇기 글을 남겨 당시의 생각을 저장해둔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취업 공고도 애초에 올라오지 않고, 불확실성이 계속되니 많은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놓기도 하고 원하던 것을 희미하게 여길 때도 있다. 나였어도 하루 종일 불만을 입에 달고 집 앞 덮밥집에서 특 사이즈를 시켜 와그적 먹어댔겠지만, 이제 내 입장에서는 친구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힘내라는 얘기밖에 해주지 못하겠다. 조금 더 멘탈 부여잡고 버틴다면 훗날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빨리 오지 않을까! 힘내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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