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유튜브 ON』
아침 9시, 20년 동안 정들었던 유통회사 출입카드를 마지막으로 반납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손끝의 느낌, 그 안에 지난날들이 눌어붙어 있었다. 누구도 나를 배웅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차장. 그리 높지 않은 직급. 회사에선 늘 중간 어딘가에 있었고, 그런 나는 늘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합병되면서 중간은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무언의 분위기, 형식적인 면담, "성과 없는 직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웃지 못할 포장. 연봉 두 배의 퇴직금을 제안받았을 때, 솔직히 조금 설렜다. 이건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왔다. 퇴직식도 없었다. 팀원들의 시선은 말해주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나가는 게 서로 좋잖아요." 그런 암묵적인 동의 아래, 나는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던 날, 냉장고엔 오랜만에 채워둔 캔맥주가 들어 있었다. 마시고 또 마셨다. 처음 며칠은 해방감에 취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함이 더 깊어졌다. 할 일이 없다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표류 같았다.
같이 퇴직한 박 형은 연락을 해왔다."나 바리스타 자격증 따려고. 커피 좋아하잖아, 나."그 말이 꽤 멋져 보였다. 누구는 자기를 위한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나는 고작 TV와 술잔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밤, 혼술 하며 유튜브를 틀었다. 여행 유튜버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밭, 바닷가 언덕에 선 노인의 얼굴, 소박한 시골 식당의 국밥 한 그릇. 마음 한편이 찌릿했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릴 적, 막연히 꿈꿨던 직업. 여행작가.
"그래, 나도 저렇게 가고 싶다."입 밖으로 튀어나온 한 마디에 스스로가 놀랐다. 정작 나는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해본 적 없으면서.
다음 날, 충동적으로 가방을 쌌다. 카메라 대신 오래된 핸드폰, 삼각대 하나. 유튜브? 그게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순진한 자신감으로 길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가까운 속초였다. 숙소는 저렴한 민박,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
바닷가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셀프 영상을 찍어보려 했지만,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랐다. 프레임도 흐릿했고, 소리는 바람에 씻겼다. 그렇게 어설프게 찍은 영상을 올리긴 했는데, 다음 날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삼촌, 그거 봤어요. 근데… 이건 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유튜브처럼 멋있게 찍어야죠. 배경도 흐리고, 목소리는 안 들리고… 이건 뭐, 여행 브이로그가 아니라 혼잣말 일기예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느꼈으니까. 처음이라는 건 늘 부끄럽고, 낯설고, 두렵다. 하지만 어쩐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유튜버 도전이 시작됐다. 혼자 말처럼 올리는 영상 한 편, 아무도 보지 않는 댓글란, 구독자 1명의 무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1명이 궁금했고, 또 기다려졌다.
48세, 나는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 나는 멈춰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