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유튜브 ON』
형님들과 고기판을 앞에 두고 소주잔을 부딪히던 어젯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 중 나와 동갑이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성호. 허름한 작업복에 선한 인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관광 낚싯배를 모는 선장이었다.
“내일 할 거 없으면, 나랑 배 한 번 탈래?”
그 말이 낯설지 않게 들렸다. 나는 멀뚱멀뚱, 어색하게 웃었다. “아… 배를…”
성호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공짜니까 걱정 말고 와. 형님이 초대한 거야.”
나는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음 날, 부둣가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바람을 맞으며 성호를 다시 만났다.
이른 아침, 바다는 고요했고 성호의 배는 생각보다 쾌적하고 좋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갑판, 은은한 바다내음, 출렁이는 물결이 반짝였다.
배를 타고 나간 건 처음이었다. 그 위에서 카메라를 드는 건 더더욱. 바람은 매섭게 불고, 배는 출렁이고, 삼각대는 휘청이고. 영상은커녕 나 자신을 고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성호는 여유로웠다. “요 각도로 찍으면 파도 느낌이 살고, 해 뜨는 방향으로는 순광이 더 이뻐.”
순간, 찐 유튜버의 마인드란 이런 건가 싶었다. 그는 관광객들 영상도 많이 찍어봤다며, 뱃머리에서부터 후미까지 여러 구도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를 따라 바다 위에서의 촬영 요령을 배웠다. 삼각대 없이 손으로 고정하는 법, 바람소리 최소화하는 위치, 낚싯줄을 던지는 타이밍까지.
중간에 배 위에서 라면을 끓였다. 파도 소리와 끓는 물소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이상하게 정겹게 들렸다. 둘이 나란히 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바다에서 라면은 진짜 기가 막히지. 인생에서 이런 맛 자주 못 본다니까.”
“진짜… 맛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배 타는구나.”
나는 끝내 미안한 마음에 낚시값 명목으로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성호는 말없이 웃으며 받았다. 그런 깔끔함도 참 성호 같았다.
라면 국물을 들이켠 뒤, 성호는 바다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지? 저 섬. 관광도 괜찮고, 민박집도 있어. 한번 가봐.”
“진짜 가도 돼?”
“그럼. 내가 데려다줄게. 넌 촬영 잘하고, 난 바다 길 잘 알고. 환상의 콤비 아냐?”
성호는 E 스타일의 전형이었다. 말도 많고, 리드도 잘하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나처럼 계획 세우고 망설이는 타입과는 정반대였지만 이상하게도, 잘 맞았다. 그는 나를 섬까지 데려다주며 내 짐까지 내려줬다.
“이 섬이 진짜 좋아. 사람도 많지 않고, 분위기도 좋아. 민박집에 젊은 사장님 있어. 애기랑 강아지랑 같이 살아.”
나는 성호의 추천대로 민박집에 향했다. 입구에는 꽃들이 심어진 작은 화분이 있었고, 현관문을 열자 젊은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고 나를 맞이했다. 강아지는 내 다리를 킁킁거리며 반겼다.
“혹시… 성호 씨 친구분이세요? 방 준비해 뒀어요.”
짐을 풀고, 나는 곧바로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바닷바람은 짭조름했고, 작은 언덕을 오르니 푸른 지붕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해안도로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였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분홍빛에서 주황으로, 그리고 붉은 자줏빛으로 물드는 하늘.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망설임 없이, 조용히.
찍고 또 찍었다. 누군가 이 영상을 볼까? 얼마나 조회수가 나올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냥 이 풍경을 기록하고 싶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조용해서.
섬의 바닷가에 앉아 셔터를 누르는 동안,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이 여행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고.
낯선 곳이 더는 낯설지 않고, 이름 모를 사람들과의 인연이 따뜻했고, 바람마저도 내 편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내 유튜브에 올릴 수 있다면, 누군가의 하루도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날의 노을은, 어쩌면 이 여행의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