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왜 쓰는가 – 글의 첫 숨을 찾아서

by 박동욱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묻는 일이다.
“나는 왜 쓰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글을 써왔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도 글은 늘 곁에 있었다.
그러나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글쓰기는 습관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로 바뀐다.

누군가는 상처 때문에 글을 쓴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그것을 언어로 바꾼다.
글로 적으면 조금 덜 아픈 것 같아 울음을 적는다.
그런 글은 서툴다. 맞춤법도 문장도 엉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글은 가장 날것의 감정이기에, 가장 솔직하고 가장 뜨겁다.
그래서 우리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고요를 얻기 위해 글을 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글 앞에 앉으면 오히려 마음이 정리된다.
소용돌이치던 생각들이 문장을 지나 세상 밖으로 나갈 때 머릿속에 남는 건 묘한 고요다.
먼지 낀 방을 청소하고 나면 공기가 맑아지는 것처럼.
글쓰기는 혼란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워내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단순히 닿고 싶어서 글을 쓴다.
사람들은 말로 다 전할 수 없다.
어떤 마음은 말이 되는 순간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남긴다.
짧은 메시지 한 줄, 고맙다는 말, 그리고 언젠가 보낼 수 있을지 모르는 편지까지.
글은 닿을 수 없는 마음을 더 멀리, 더 깊이 전하는 다리가 된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존재의 확장이다.
쓰지 않으면 흩어지고 사라질 생각과 감정이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의 순간을 ‘언어’라는 틀 안에 가두어 세상에 남기는 일이다.
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무게가 문장이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욕망 중 하나가 ‘남기고 싶은 마음’ 아닐까.
벽화도, 시도, 소설도 같은 뿌리를 가진다.
“나는 여기 있었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
이 단순한 문장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음.
그것이 글쓰기의 첫 숨이다.

글을 쓰다 보면 문득 이런 깨달음을 맞는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던 시절엔 하루가 그냥 스쳐갔다.
기억도, 감정도, 하루 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작은 것도 기록하려 한다.
하늘이 오늘은 더 맑았다는 것, 커피가 쓸쓸하게 식어갔다는 것,
내 마음이 어제보다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
글쓰기는 삶을 ‘지나가는 것’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바꿔준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매달린다.
“이 표현이 맞을까?” “더 좋은 단어는 없을까?”
물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언제나 ‘왜 쓰는가’다.
이유가 선명할수록 글에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가 명확하면, 그 글은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 있다.
상처를 꾹꾹 눌러 담은 글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사랑을 숨기지 않은 글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
기교보다 중요한 건 ‘쓰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글’이다.

글쓰기는 ‘잘 쓰기’보다 ‘계속 쓰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이유가 무엇이든 좋다.
상처 때문이라도, 고요를 원해서라도,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서라도.
그렇게 한 문장, 두 문장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된다.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쓰는 동안, 그리고 다 쓰고 난 후에 알게 된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빈 종이 앞에 앉아, 지금 내가 왜 쓰고 싶은지
그 질문 하나에 솔직해지는 것.

그 솔직함이 바로, 글의 첫 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