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미학 #장소 편 1

〈텅 빈 방, 나만의 아지트〉

by 박동욱

문을 닫는 순간,

세상이 하나 줄어든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용히 나 자신이 들어온다.

아무도 없는 방,

작고 단순한 공간.

누군가는 텅 비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가장 많이 채워진다.

**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와 작은 조명.

이 방에는 화려한 것 하나 없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있다.

불을 켜고

커튼을 닫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면

이 방은 세상의 어떤 곳보다

내 편이 된다.

**

여기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웃지 않아도 되고

센 척도, 참는 척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방 안에서 나는

가장 편안한 내가 된다.

세상 앞에서는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나’로 있어도 충분하다.

**

창밖에서 들려오는 자전거 소리,

가끔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진동,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고양이 울음까지도

이 방의 일부가 된다.

소음조차도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나는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

방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놓여 있다.

늘 읽다 만 책,

다 마신 커피잔,

차곡차곡 쌓아둔 감정들.

이 어지러운 상태조차

지극히 나다운 풍경이라

나는 이 방이 좋다.

**

텅 빈 방이라고 생각했던 이 공간이

어느새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됐다.

혼자라는 사실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그 혼자됨이

내게 쉼을 준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흐른다.

숨소리, 마음소리,

그동안 놓치고 지나쳤던 것들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

방 안은 작지만

그 안에서 나는 커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시 나아가기 위해,

나는 이 방에서 잠시 멈춘다.

여기서는

작은 숨도 의미가 되고,

가벼운 생각도 깊이가 된다.

**

이 방은 나의 피난처이고

작은 성소이며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잠시 머무는 정류장이다.

문을 열면 다시 바깥 세상이 시작되겠지만

괜찮다.

나는 이 방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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