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우리』
내일모레 쉰. 숫자는 담담한데 마음은 가끔 요동친다.
결혼도, 현재의 직장도,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칸도 없다.
이 사실이 나를 위태롭게 만드는 밤이 분명 있다.
동창들의 근황을 듣다 보면 비교는 너무 쉬운 일이고,
그 끝에 서 있는 나는 한없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루지 못한 것과 실패한 인생은 같은 문장이 아니다.
아직 채워지지 않았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
나는 여전히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고,
누군가는 그 달릴 힘이 멋지다고 말해준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나는 내 숨이 알려준다.
우리는 흔히 이미 이룬 것들은 빼고,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아직 못 이뤘다”라고 말한다.
손에 쥔 것의 온도는 금세 잊고,
닿지 않은 봉우리만 도표처럼 확대한다.
하지만 미달(未達)은 낙오가 아니라 미완(未完)이다.
미완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고,
가능성은 나를 내일로 밀어 올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나는 내 편이 되어 나를 점검해 본다.
없다고 무너지는 목록 대신, 있는 것의 결을 더듬는다.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난 횟수,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참아낸 말 몇 개,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끝까지 완주한 작은 일들.
이건 트로피가 아니라도 내 삶의 구조를 지탱해 온 기둥들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이뤄야 할 것을 펼친다.
크게 말풍선을 그리기보다 오늘의 언어로 적는다.
“하루 30분, 내 일에 집중하기.”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곳에서 영감 받기.”
“올해 안에, 나만의 프로젝트 초안 만들기.”
목표는 깃발이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서면 속도는 그저 거들뿐이다.
가끔은 마음이 불안의 가장자리로 기울겠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작은 증거를 남긴다.
메모장에 오늘의 한 줄,
책갈피 사이에 접어둔 버티기의 기록,
밤을 지나 아침으로 건너온 나에게 쥐여주는 따뜻한 물 한 잔.
그 조용한 증거들이 쌓이면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문장은
자연스레 설 자리를 잃는다.
이루지 못한 것들은 내게 질문을 보낸다.
정말로 원하는가, 왜 원하는가,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 곧 삶의 결이 된다.
늦게 피는 꽃은 늦게 핀 만큼 오래 남는다.
철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익어가는 과일처럼,
나의 시간도 나만의 속도로 단단해질 수 있다.
집이 없어서, 직함이 없어서, 관계의 형태가 달라서
나의 가치를 감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가벼워진 짐만큼 더 멀리 걸을 수 있다.
소유의 목록이 비어 있을수록
경험의 목록을 넓힐 수 있고,
남들이 이미 정해둔 성공의 문법 대신
내 문장으로 삶을 써 내려갈 수 있다.
결국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은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의 지도다.
지도가 있다는 건, 길이 있다는 뜻이고,
길이 있다는 건, 오늘도 한 걸음 내딛을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살아왔고,
아직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밤이 조용해질 때, 나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아직 도중일 뿐이다.
오늘의 나를 믿고, 내일의 나를 다시 불러낸다.”
미완은 패배가 아니다.
미완은 가능성의 현재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