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by 박동욱

세상 모든 부모가 다 좋은 부모일 수 없다는 사실, 머리로는 이해한다. 문제는 결국 마음이다.

나와 맞지 않는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매일 마음이 벽을 타고 오르는 일과도 같다.

“독립하면 돼”, “거리를 두면 오히려 관계가 나아질지도 몰라”라는 말을 듣는다.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각자의 사정은 복잡하고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다.

게다가 ‘피붙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어떤 책임은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

결국 또 나는 자식으로서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작은 나를 몇 번이나 잃어버렸는지 헤아리기가 두렵다.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네 꿈이 뭐니?” 정확히는 “내가 없으면 너는 뭘 해서 먹고 살 거니?”였다.

나는 내 삶을 붙드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고, 여행기를 쓰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어 여행을 일로 삼고 싶다고.

엄마는 말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내 대답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말을 다시 반복했고, 벽은 한 층 더 높아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장벽이 생겼다.

나이가 들고 자의식이 뚜렷해질수록 그 장벽의 그림자가 더 길어지는 것도 느꼈다.

얼마 후 나는 깨달았다. 이 벽은 한 노인의 단순한 무지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장도 보고, 병원도 같이 가고, 서류도 챙기고, 계절이 바뀌면 필요한 것들도 미리미리 준비한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효자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사랑보다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의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을.


내 마음은 쇠창살 안에서 하루를 버틴다.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

이렇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삶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오늘도 내 대답은 오늘만큼만,이다. 내일의 계획들은 자주 흩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내가 되기 위해 작은 시도를 계속한다.

거절하고 싶은 말에는 조용히 고개를 젓고, 내 삶과 관련된 선택에는 내 목소리를 내본다.

큰 싸움 대신 작은 경계선을 하나씩 세운다. 독립은 꼭 이사를 떠나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방 하나, 문 하나, 침묵 하나, 그렇게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독립도 있다.

엄마는 여전히 묻는다. “그걸로는 못 먹고 살아.” 이젠 내 대답도 조금 달라졌다. “나는 이렇게 살아갈 거야.” 긴 설명은 덧붙이지 않는다.

이해를 설득으로 덮으려 하면, 우리의 벽은 더 두꺼워진다.

결국 서로의 세계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수긍마저도 쉽지 않은 날엔 침묵이 나를 살린다. 그 침묵은 도망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는 작은 숨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식으로서 맡은 일들을 계속 하게 될 거다.

다만, 그 일에 나 자신을 전부 태워버리진 않으려고 한다.

나를 잃은 효도는 오래 갈 수 없다. 지키면서 내미는 작은 친절이 오히려 멀리 닿을 때도 있다.

벽은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그 벽은 동시에 두 가지를 가르친다.

넘을 수 없는 거리와, 그 거리 너머에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둘을 동시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밤이면 마음 깊은 데서 철컥대는 소리가 들린다. 쇠창살이 닫히는 느낌이다.

그럴 땐 조용히 책상에 몸을 기댄다. 문장 몇 줄, 숨 몇 번, 그렇게 작은 창문을 내 삶에 연다.

창밖에서 바람이 들고, 내 대답이 내 편이 되어주는 기분이 든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부모가 뭐라 해도,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나를 지키려 한다.

그저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쌓아가기 위해서. 아마 누구 눈엔 나는 괜찮은 자식일 테지만, 이제는 ‘누가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 그 방법을 익히는 사이에 삶도 조금씩 정돈된다.

완벽한 화해가 아니어도 괜찮다. 상처가 남은 채로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벽이 당장 낮아지지 않아도, 그늘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산다. 필요한 일은 하면서도, 마음까지 모두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걸 배운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존중은 배워야 한다는 걸, 나는 내 쪽에서부터 실천해 보려고 한다. 언젠가 이 벽에 작은 창 하나 더 내릴수 있다면, 그 또한 내 삶의 성취일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내 안의 독립을 하루치씩 이어붙인다. 견디고, 돌아보고, 다시 걷는다. 그리고 내가 오래 사랑하려는 사람 바로 나 자신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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