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데이터 – 숫자 뒤에 있는 얼굴들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by 박동욱

2장. 데이터 – 숫자 뒤에 있는 얼굴들


병원 대기실.

손에 쥔 번호표가 땀에 약간 젖어 있다.

접수창구 옆에는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진료 정보는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연구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

서류에 이름을 적고, 주민번호를 쓰고,

“동의합니다”에 체크를 한다.

몇 번의 클릭과 사인을 하고 나면

한 사람의 통증, 불안, 가족력, 약물 복용 기록이

‘데이터’라는 이름 아래 정리된다.


병원을 나오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지도 앱이 오늘의 이동 경로를 띄워준다.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디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하루치 동선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집에 돌아오면 포털 사이트에는 검색 기록이 남아 있다.

“잠 안 올 때 대처법”

“이 나이에 이직 가능할까”

“우울증 초기 증상”

지워도 금세 다시 쌓인다.

아무리 덮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흔적들이다.


우리는 이 모든 흔적을 합쳐 "데이터"라고 부른다.

숫자, 그래프, 통계, 차트로 한 번 더 가공하면

이제 그건 "인사이트"가 된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 숫자들은 결국 누군가의 삶의 일부다.


검색 기록은 그 사람만의 고민이다.

누군가는 밤새 “통증”을 검색했을 테고,

또 누군가는 “헤어지는 게 맞을까”를 찾아봤을 것이다.

병원 기록에는 한 사람이 걸어온 몸의 역사가 담긴다.

위염, 디스크, 불면, 공황.

누군가에게는 병명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오래 품어온 수치심이기도 하다.


위치 정보는 하루 동안의 동선이면서,

혼자였던 시간과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이 섞인 지도가 된다.

편의점 앞에 멈춰 선 시간,

병원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 시간,

집을 나섰다 다시 돌아온 시간이 모두 덧붙여진다.


데이터는 절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데이터는 한 사람의 반복된 선택,

숨기고 싶은 순간, 애써 견뎌낸 밤이

여러 겹으로 쌓여 이루는 기록이다.


문제는, 이 기록을 마주한 사람의 시선이다.

숫자와 그래프만 화면에 남는 순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게 된다.

이 숫자들 뒤에 진짜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전 연령대 평균 이용 시간”이라는 한 줄 안에는

지친 젊은 부모의 밤이 들어 있고,

“이탈률이 높은 구간”이라는 숫자 뒤에는

불안해서 자꾸만 앱을 열어보다

결국 포기하고 사라진 누군가의 시간이 숨겨져 있다.

“우울 관련 검색어 증가”라는 그래프 아래에는

스스로 병원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문학은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

이 질문을 데이터 시대의 언어로 바꿔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데이터를 사용할 때,

데이터의 주인을 수단으로만 보지 말라.”


완벽한 답은 없다.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 없이 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

의학 연구도, 도시 설계도, 교통 정책도,

심지어 학교나 도서관 운영조차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더 중요한 건, 마음속의 최소한 기준이다.

내가 어떤 데이터를 쓰려할 때,

딱 한 번만 이렇게 상상해 보는 것.


“이 정보가 내 것이거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것이라면

정말 이대로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 질문은 거창한 도덕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단순하고, 인간적인 감각이다.


어떤 회사가

야근 기록을 바탕으로

모르게 몇몇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어떨까.

그 데이터가 내 야근 기록이라면,

이걸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병원에서 모인 진료 기록을

익명화했다는 이유만으로

환자 동의 없이 특정 기업에 마음껏 제공한다면,

그 안에 내 가족의 병력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위치 정보를 모아서

사람들의 이동 패턴을 분석하면

도시는 더 안전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정보가

개인의 취향이나 약점을 파고드는 광고에 쓰일 수도 있다.

만약 그 안에 내 아이의 등하굣길까지 들어간다면,

과연 어디에서 멈추고 싶을지 생각이 달라진다.


AI도 마찬가지다.

AI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문장, 목소리, 일기, 검색어가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이 결과물을 사용하는 내 태도는 어떤가?”

“이 도구를 쓰면서,

남의 삶에서 떼어 온 조각들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진 않은가?”

여기서 데이터를 아예 쓰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그 데이터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한 번쯤 상상해 보자는 제안이다.

숫자 뒤에 얼굴을 그려보는 상상력,

그래프 위에 삶을 얹어보는 상상력 말이다.

어쩌면 이런 상상력 자체가

데이터 시대에 우리가 꼭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 검색 기록, 내 병원 기록, 내 위치 정보가 모두

어딘가에 저장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온전히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니 남는 건

서로의 데이터를 바라보는 태도, 마음의 예의다.

서로의 취약함을 다루는 손길에 담긴 온도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숫자가

누군가의 두려움이나 고민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사람답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숫자가 만들어진다.

조회수, 클릭 수, 체류 시간, 이탈률, 재방문율처럼 말이다.

이 숫자들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매번 선택하게 된다.

이 숫자를

단순히 성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하루가 남긴 흔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데이터 시대의 인간다움은

복잡한 이론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다.

가장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 정보가 내 것이라면,

이렇게 다뤄져도 괜찮을까?”

나는 이 질문을

데이터를 다루는 이들에게

한 번쯤 마음에 새겨두었으면 한다.

숫자 뒤에 있는 얼굴을 잊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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