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기계가 대신해 주는 시대에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by 박동욱



카페 창가에서는 노트북 화면에 커서가 분주하게 깜빡인다. 손가락은 천천히 움직이는데도, 문장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제안된 문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화면 아래에 파란 버튼이 하나 뜬다. 그걸 누르면, 또 한 단락이 순식간에 늘어난다.


바로 옆 테이블을 보면, 태블릿 위에 선들이 저절로 그려진다. 아이 얼굴을 찍어 올렸더니, 몇 초 만에 그 사진이 예쁜 일러스트로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디자이너가 며칠이나 붙들었을 일을, 지금은 어른도 아이도 버튼 한 번이면 끝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자주 말한다.

“이제 기계가 다 해 주네.”

시간이 줄고, 수고가 줄고, 실수도 줄었다.

삶이 더 편해지고, 세상이 더 똑똑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더 편해졌는데, 왜 마음은 더 불안해질까?”


기계가 대신하는 일은 날마다 많아지고 있다.

일정을 정리하고, 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요약한다.

사진을 보정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음악이나 그림까지 만들어낸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일’이라고 불러온 것들 중 상당수는

기계가 맡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럼 인간에게 남은 일은 무엇일까?”


AI 시대를 두고 누군가는 말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이라고.

또 어떤 이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줄 구원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AI는 괴물도, 구원자도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더 선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에 가깝다.


우리는 그 거울 앞에서 우리 자신을 시험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더 편하게 얻고 싶은 욕망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럴듯한 답을 얻고 싶은 게으름을.

환자와 외로운 이, 공부에 지친 아이의 곁에서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전해 주고픈 선의도.

또 한편으론

혐오나 조롱, 폭력적인 말과 충동까지도.


AI는 이런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증폭한다.

기계는 그저 계산하고

그 결과를 우리 앞에 놓아둔다.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기술 설명서가 아니다.

새로운 기능을 빠르게 익히는 법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 대신, 오래된 질문들을 다시 꺼내 보고 싶다.


누가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누르는지,

숫자와 그래프 뒤에 있는 얼굴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빠름의 시대에 느린 마음을 어떻게 지켜낼지,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묶인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만지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


내가 가끔 떠올리는 건

하얀 화면 앞에서 혼자 끙끙대던 예전 내 모습이다.

샤프 하나, 공책 하나에 의지해 밤을 지새우던 시절이 있었다.

한 문장 고치려 지우개 부스러기가 책상 위에 쌓였던 밤.


그리고 지금 나는

AI 창을 띄워놓고 글을 쓴다.

가끔은 내가 쓰려던 문장을

기계가 먼저 내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이 인다.

안도와 허탈, 편리함과 위기감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렇게 계속 써도 괜찮을까?”

“그래도 이 문장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질문을 자기 자리에서 품고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머는 코드 앞에서,

교사는 아이들의 과제를 보며,

의사는 진단 화면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는 나는 빈 문장 앞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같은 물음을 떠올린다.


AI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진짜 던지고 싶은 질문은

“기계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가 아니다.

“기계를 곁에 둔 채,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 앞에서

인간다움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마음,

남에게 넘길 수 있는 일도 스스로 감당하는 책임감,

쉽게 빼앗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존엄.


기계에게 맡기지 않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누군가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는 일,

사랑한다고 마음을 고백하는 일,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고 잠시 머무는 일.

이렇게 느리고, 서툴지만 꼭 필요한 행동들을

우리가 끝까지 품고 있는 한,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그런 믿음에서 시작됐다.

AI를 적으로 여기거나, 신처럼 떠받들지 않는다.

도구는 그저 도구로 두면서,

그 때문이 아니라 그 덕분에

우리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각 장에서는 어떤 장면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려 한다.

카페 구석에서 조용히 AI에게 글을 맡기는 사람,

숙제를 하겠다고 AI 창부터 열어 보는 아이,

아무리 훌륭한 추천 알고리즘도 골라 주지 못하는 인연,

멈추지 못해 지친 마음과

일부러 로그아웃을 눌러보는 밤 같은 순간들.


그 장면들 옆에 작은 질문 하나씩을 올려놓고,

빠르지 않게, 그러나 진솔하게 생각해 보려 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책임이 남아 있고,

어떤 감정을 지켜야 하며,

어떤 관계를 선택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이 책은 명확한 정답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약속한다.

“기계가 모든 걸 대신해 주는 시대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제, 첫 번째 이야기로 들어가 보려 한다.

기계가 대신 추천해 주는 세상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 그 아래 적히는 내 이름,

그리고 그 이름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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